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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활동가/풀꽃나무⦁생태⦁환경 이야기

[술술과학] 잡초를 사랑한 시인들(1)🌿_식물 EP.03 (식물의 시간#1)

by hwanghoo1004 님의 블로그 2025. 10. 18.

[술술과학] 잡초를 사랑한 시인들(1)🌿🌼💕_식물 EP.03 (식물의 시간#1)

1. 🌼 꽃별과 운하, 그리고 '잡초': 시인의 눈에 비친 경이로움 

A. 시인을 사로잡은 '작고 맑은 꽃별 은하'

우리의 탐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에서 시작됩니다. 시인 문태준은 "○ ○ ○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00:26]라고 노래하며, 이 꽃에 대한 깊은 경외와 연민을 표현했습니다.
또 다른 시인 김선굉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그는 이 꽃이 마치 "백의의 억조창생이 한데 모여 사는 것 같고"[00:38], "장엄한 운하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며, "흰 구름이 내려와 앉은 것 같기도 하구나"[00:45]고 읊습니다. 수많은 꽃이 모여 거대한 하나의 흰 구름이나 은하를 이루는 듯한 장관! 이는 결코 과장만은 아닙니다. 영화 <왕의 남자>나 일본 애니메이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에 등장하는 황홀한 흰 꽃밭의 주인공이 바로 이 꽃이기 때문이죠[01:14].
그렇습니다. 이토록 찬사를 받은 꽃은 우리나라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지천으로 피는[01:26],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강인한 꽃, 바로 개망초(Daisy Fleabane, Erigeron annuus)입니다. 단일종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피는 꽃일 겁니다.

 
B. 달걀꽃, 소꿉놀이의 추억 🍳

개망초의 꽃 모양은 가운데 노란색을 중심으로 흰색의 꽃잎이 둘러싼 모습이 마치 계란프라이를 닮았다고 하여, 흔히 "계란꽃"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01:37]. 특히, 장난감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소꿉놀이에서 이 꽃이 실제로 계란프라이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따뜻한 추억도 전해져 내려옵니다[01:46].


2. 📛 '개'라는 이름의 멍에와 흑역사: 인간의 오만과 편견 

전문가로서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은 바로 이 꽃의 이름에 붙은 '개(狗)'라는 접두사입니다.

 
A. 우생학적 사고의 시작? '개'의 의미

우리말에서 식물이름 앞에 '개'가 붙으면, 보통은 기존에 있던 종과 닮기는 했으나 [01:54], 크기나 질적으로 못하다부정적인 뉘앙스가 슬쩍 덧씌워집니다. 예를 들어, '빛 좋은 개살구'의 개살구처럼, 열매가 살구보다 맛이 없다고 해서 '개살구'로 불리게 된 경우죠 [02:10]. 이처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기준으로 멋대로 '개'를 붙이는 행위는, 어쩌면 '잡초'라 명명하는 행위와 더불어, 생물에 대한 우생학적 사고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06:21].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개'를 '매우' 또는 '엄청나게'라는 긍정적 강조의 의미로도 사용하죠 [02:24]. 그런 의미에서 개망초는 정말 "개 예쁩니다" [02:28].

 
B. 만국초 (亡國草)로 불린 슬픈 역사 😥

개망초는 이름 뒤에 더욱 슬픈 흑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 원산지 북아메리카: 개망초는 사실 일본산도, 한국산도 아닌 북아메리카 원산입니다 [02:56].
  2. 철도의 침략: 구한말,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하면서 철도개발을 시작했습니다 [02:36]. 이때 철길을 따라 이 개망초가 엄청나게 피어났습니다. 사실은 일본에 철도가 처음 들어올 때 사용된 나무에 개망초 씨앗이 함께 묻어 왔고 [03:00], 생명력과 번식력이 워낙 강한 개망초가 일본을 먼저 점령한 후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입니다 [03:20].
  3. 망국초의 오명: 조선 사람들은 이 꽃이 일본인들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라는 뜻으로 망할 망(亡) 자를 써서 '망국초(亡國草)'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개망초'로 바뀌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02:44].
  4. 철도초 (鉄道草):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 꽃을 '철도초'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한 잡초연구가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기차 소녀'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03:13].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입니다. 개망초에게는 단 하나의 혐의도 없습니다[03:38]. 눈부신 철도개발과 제국주의의 확산이라는 인간의 역사에 휘말려 '망국초'라는 슬픈 오명을 뒤집어쓴, 이방인이자 희생자였을 뿐입니다. 개망초의 꽃말이 아이러니하게도 '화해'인 것도, 어쩌면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변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3. 🔬 생물학적 관찰: 강인한 두해살이 풀 

개망초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감성을 잠시 접어두고, 냉철한 식물학적 관점으로 개망초를 분석해 봅시다.


A. 국화과의 슈퍼스타 🌟

개망초는 국화과 (Asteraceae) 식물입니다[04:21]. 국화과는 전 세계적으로 2만 3천여 종이 속해 있어, 난초과와 함께 꽃 식물 중 가장 종이 많은 거대한 패밀리입니다. 우리가 보는 꽃의 모양을 꽃차례(Inflorescence)라고 하는데, 국화과 꽃들의 특징은 사람 머리 모양을 닮은 두상화서(Capitulum)를 이룬다는 것입니다[04:33].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개망초를 보고 "한 송이 꽃"이라고 생각하지만[04:42],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꽃처럼 보이는 형태입니다[04:47]. 해바라기 같은 국화과 식물의 노란 꽃잎 한 장 한 장이 모두 별개의 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개망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망초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 종류의 꽃이 모여 있습니다[05:02]:

  • 혀꽃 (Ray Flower): 바깥쪽에 위치한, 흰색의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입니다.
  • 관꽃 (Disk Flower): 가운데 노란색의 대롱 모양으로 촘촘히 모여있는 부분입니다.

B. 두 얼굴의 잎과 두해살이의 전략

개망초는 잎 모양도 신기하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05:10]:

  1. 뿌리에서 나는 잎: 땅바닥에 넓게 퍼져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햇빛을 최대한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2. 줄기에 달린 잎: 줄기를 따라 위로 자라나며 광합성을 합니다.

이러한 개망초의 생존전략은 두해살이 풀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04:17].

  • 1년 차 (가을~겨울): 가을에 씨앗을 퍼뜨리고, 파란 싹이 뿌리를 내립니다. 겨울이 되면 대부분의 잎은 죽고, 최소한의 잎과 뿌리만 남겨 추위를 견뎌냅니다[04:04].
  • 2년 차 (봄~가을): 이듬해 봄, 잎이 넓게 자라며 영양분을 축적합니다. 그리고 늦봄(5월)부터 초가을(9월)까지 아주 오랫동안 하얀 꽃을 피워 대량의 씨앗을 맺고 생을 마감합니다[03:53].

이처럼 두 해에 걸쳐 생장과 번식에 집중하는 전략이야말로 개망초가 지천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C. 과학자가 사랑한 또 다른 잡초: 애기장대 🌱

한편, 시인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과 찰떡궁합인 잡초도 있습니다. 바로 애기장대 (Arabidopsis thaliana)입니다[05:43]. 애기장대는 식물학 연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델생물, 즉 식물학계의 슈퍼모델이라 불립니다[05:51].
개망초가 국화과라면, 애기장대는 배추과 (Brassicaceae)에 속합니다[05:54]. 배추과는 꽃잎이 십자모양으로 네 장 달린 십자화과(十字花群) 식물로 유명합니다[06:01]. 짧은 생활주기, 작은 게놈 크기, 쉬운 재배 등의 장점 덕분에 전 세계 연구실에서 유전학적, 생리학적 비밀을 풀어내는 핵심 열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4. ✍️ 잡초를 향한 시인들의 숙명적인 사랑  

왜 시인들은 이처럼 이름 앞에 '개'라는 멸시의 접두사가 붙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초'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일까요?[06:10]
잡초란 누가 돌보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더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인간의 경작지에서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번성하는 풀. 이것을 '잡초'라고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존재가치를 '없음'으로 규정하고, 인간중심의 농경 사회적 편견을 투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들의 사랑은 바로 이 편견에 대한 가장 힘찬 부인입니다[06:34].

  • 보잘것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 시인들은 세상이 외면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를 노래합니다[06:54].
  • 덧없이 스러져 가는 것에 대한 연민: 손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연탄재처럼,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가슴 저리게 아파하는 것이 바로 시인들의 숙명입니다[07:18].
  • 이름없는 들꽃의 영혼: 어느 담벼락 아래, 어느 비탈에 홀로 피어있는 이름없는 들꽃[06:41]. 그곳에서 시인들은 진정한 생명의 가치, 즉 '자존'과 '고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5. 어머니의 얼굴을 닮은 개망초: 문태준 시인의 헌사 🙏

오늘 영상은 개망초 시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문태준 시인의 시 <개망초>로 마무리됩니다[07:54]. 이 시는 잡초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숭고한 경지로 끌어올립니다.
시인은 한적한 여름 대낮, 태양을 이고 홀로 서 있는 개망초의 모습에서 슬픔을 봅니다[08:02]. 그리고 이 외로운 꽃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나는 개망초가 어머니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지요[08:16]. 하얀 수건을 쓴 반이라는 내 어머니의 얼굴 혹은 영혼"[08:24].

 
흰 수건을 쓴 채 묵묵히 가족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어머니의 모습과, 철도건설이라는 역사의 폭력 속에서도 묵묵히 흰 꽃을 피워낸 개망초의 고독하고 강인한 영혼이 완벽하게 포개어집니다. 이처럼 시인은 미물(微物)이라 불리는 잡초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인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잡초의 존재가치를 영원히 빛나게 해줍니다.
이제 우리는 개망초라는 이름을 기억합니다[07:21]. 올봄과 여름에는 길가에 핀 그 흰 꽃을 보며,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대신, '아, 저것이 어머니를 닮은 개망초구나!' 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