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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의 진화사

by hwanghoo1004 님의 블로그 2025. 10. 28.

독약의 진화사

 

독약의 진화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최초로 컴퓨터의 개념을 도입해 당시로써는 절대로 풀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낸다. 그의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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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최초로 컴퓨터의 개념을 도입해 당시로써는 절대로 풀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낸다. 그의 암호 해독으로 전쟁은 2년이나 단축되었으며, 약 1400만 명이 죽음의 위기로부터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튜링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는 당시로써는 ‘정신병’으로 여겨졌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돼 여성호르몬 강제 투여 명령을 받았다. 남자에게 끌릴 뿐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던 튜링은 이 판결에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블랙 유머로 대응한다. 치명적인 독극물인 시안화칼륨(청산)을 주입한 사과를 한 입 베어무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마치 백설공주처럼.
 

 

자연 속의 독


독은 사람들이 존재를 알게 되고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전에도 자연계에 존재해왔다. 생물은 먹잇감을 구하고 천적에게서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다양한 독소를 만들어 생존을 도모했다. 천계옥찬(天界玉饌)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맛있다는 복어는 알과 내장에 서른 명의 사람들을 쓰러트릴 수 있는 독, 테트라도톡신을 품고 있으며, 살모사는 혈관벽을 망가뜨리고 출혈을 일으키는 무서운 혈관독을 엄니에 숨겨 두었다. 따지고 보면 페니실린을 비롯해 자연에서 얻어낸 항생제 자체가 이들이 경쟁자인 다른 세균들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독’인 셈이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이 다른 생물을 모방해 독을 만들고, 독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 독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우연한 사고로 중독되어 생명을 잃는 것을 막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독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적이란 그들과 같은 인간 종족인 경우가 월등하게 많았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폭군(暴君) 네로는 의붓아버지이자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독으로 쓰러진 뒤-그 뒤에는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술수가 있었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무너져가는 청의 재도약을 꿈꿨던 광서제는 비소에 중독돼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사극에서는 사약을 받고 죽어가는 선비들의 모습이 등장하곤 한다. 이렇듯 독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가릴 것 없이, 자살과 타살과 단죄의 수단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비소, 그 치명적인 유혹


이처럼 긴 독살의 역사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독은 바로 비소(砒素, arsenic, 원소기호 As)다. 처음 비소를 분리한 사람은 13세기 중엽, 독일의 신학자이자 자연철학자였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193~1280)였다. 비소가 독약의 대명사처럼 사용된 데는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흔하게 구할 수 있는데다가 값도 쌌고 사용하기도 쉬웠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비소는 이미 살충제나 쥐약, 페인트나 심지어 화장품의 재료로 별다른 제제 없이 시장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었고, 무색무취의 단맛이 나는 분말이어서 음식에 설탕으로 위장해 쉽게 섞을 수 있었다. 여기에 당시의 기술로는 검출도 쉽지 않아 비소는 단숨에 살인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독약의 최고봉으로 자리잡았다.

비소가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은 기록된 것만도 차고 넘친다.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은 보르자 가문의 체사레와 루크레치아 남매의 엽기적인 행각일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이상적 군주상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비소를 이용한 살인에서도 재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삼산화비소가 들어 있는 ‘라 칸타렐라’라는 흰색 가루를 이용해 그들의 정적을 제거하면서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갔다.

17세기가 되자 비소는 더욱 대중화되었다. 이탈리아의 토파나(Toffana)라는 약재상이 판매한 비소용액 ‘아쿠아 토파나’는 볼을 붉게 만드는 연지 대용 화장품으로 판매되었지만 본래의 용도보다는 누군가를 죽이는데 더 많이 사용되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석세시옹’이라는 이름의 가루약이 인기를 얻었는데, 우리말로 ‘상속의 가루’라는 뜻이었다. 재산을 상속해줄 부유한 친척을 없애는데 특효라는 의미였다.

당시 사람들은 비소가 왜 사람들을 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밝혀진 것은 이렇다. 비소(As)는 화학적으로 인(P)과 비슷하여, 비소가 몸에 들어오면 우리 몸의 DNA 속에 든 인이나 세포내 에너지인 ATP(아데노신삼인산)의 인을 대치한다. 그래서 DNA가 망가지거나 에너지 부족으로 굶어죽는 세포들이 속출해 개체 역시 맥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독살, 대상이 넓어지다


비소는 1832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마시가 유용한 검출법을 찾아낸 이후 서서히 기세가 꺾여갔다. 또 각종 독극물 검출법이 등장하면서 독으로 누군가를 살해하는 비율은 예전에 비해 떨어졌다. 하지만 독극물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독살이 개인적인 원한이나 유산을 위해 특정한 누군가를 겨냥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면 20세기 들어서는 다른 범죄의 일환으로 이용되거나 공포감을 퍼뜨리는 테러의 수단이 되곤 한다. 1948년 일본에서는 의사로 위장한 은행 강도가 치명적인 세균성 이질에 대한 예방약이라며 은행원들에게 시안화칼륨을 먹여 이들이 죽어가는 사이 유유히 은행을 털어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역시 누군가가 타이레놀에 시안화칼륨을 섞어 유통시켜 7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는 출근시간 혼잡한 지하철 내에 맹독성의 사린가스가 유포되어 12명이 사망하고 5천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사이비종교단체인 옴진리교의 일원으로, 특수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대규모 독극물 테러가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일상의 공포’에 몰아넣었다.

20세기 이후 일어난 일련의 독극물 사건들을 살펴보면, 독극물의 종류와 독성 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악의(惡意) 역시 점점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독기(毒氣)는 비소나 시안화칼륨 같은 독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수단으로 이기심을 채우려는 인간의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 독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독을 무력화시키는 물리적 해독제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어두운 악의를 정화해줄 심리적 해독제도 반드시 같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글 : 이은희
출처 : 동아사이언스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