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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과 불교가 풀어낸 혐오의 본질, 보만스님‧한민

by 별꽃74 2025. 8. 16.

[#마음디코딩] 나락의 시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나?😢 / 심리학과 불교가 풀어낸 혐오의 본질 #보만스님 #한민교수님 #불교 #심리학

 

1. 혐오의 시대, 그 뿌리를 찾아서: 심리학과 불교의 심층 진단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미움과 분노, 혐오라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듯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배제의 목소리는 우리 마음을 더욱 멍들게 하죠. 이 답답한 현실의 근원을 찾기 위해 보만 스님과 한민 교수님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깊은 성찰을 꺼내 보였습니다. 이 대화는 단순히 감정을 해부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과 사회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1. 심리학적 관점: 미움과 혐오, 그 심오한 차이와 진화적 뿌리 🤔

한민 교수님은 이 논의의 출발점으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미움'과 '혐오'를 심리학적으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움은 비교적 가볍고 개인적인 감정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매운 음식을 싫어해"라고 말할 때의 감정은 개인의 선호도 차이에서 오는 미움에 가깝습니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나 경멸을 수반하지는 않죠.
하지만 **혐오(disgust)**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을 넘어, **'역겹다'**는 강렬하고 본능적인 신체반응을 포함합니다. 🤢 진화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혐오 감정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발달한 감정입니다. 상한 음식, 오염된 물, 독충, 전염병을 옮기는 동물 등 생존에 위협이 되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멀리하고 피하게 만드는 강력한 경고 시스템인 셈이죠. 이처럼 혐오의 뿌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생존 본능에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혐오의 감정이 사람에게 향할 때입니다. 🤮 현대 사회에서 사람을 향한 혐오는 더 이상 물리적인 생존 위협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내 삶의 방식', '내 가치관', '내가 속한 집단'이라는 사회적 기반에 대한 위협이라고 인식될 때 혐오 감정이 작동합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등을 보며 '저것은 나의 사회적 생존을 위협하는 역겨운 존재'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죠.
교수님은 혐오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의 끔찍한 역사적 사례들을 짚어주셨습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열등한 종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학살을 정당화했던 것,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에게 '미개한 민족'이라는 혐오를 투사하며 침략과 학살을 감행했던 것들이 바로 그 예입니다. 😢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집단이 통제감을 상실했을 때' 분노와 불안을 돌릴 희생양을 찾고, 그들을 혐오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우월성을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혐오 감정의 핵심에는 '내가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반드시 개입됩니다. 이 믿음은 곧 **'내가 바로 정의다'**라는 오만한 확신으로 이어지고, 그 확신은 타인을 향한 무자비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논리가 됩니다. 심리학은 이 과정을 **'탈인간화(dehumanization)'**라고 부릅니다. 혐오의 대상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역겨운 벌레나 오물로 취급될 때, 우리는 양심의 가책 없이 그들을 파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1-2. 불교적 관점: '분별심', 지혜의 칼인가, 혐오의 칼인가 🙏

보만 스님은 이 혐오의 뿌리를 불교의 핵심 개념인 **'분별심(分別心)'**에서 찾습니다. 분별심은 말 그대로 좋고 싫음, 옳고 그름, 우월함과 하열함을 나누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스님께서는 이 분별의 기준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혐오의 씨앗이 뿌려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외치셨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구절을 흔히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다'라는 오만함의 표현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불교적 본래의 의미를 명확히 짚어주셨습니다. 이 구절은 '나'라는 존재가 지닌 '격별성(격별性)', 즉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성을 뜻합니다. 💡 모든 존재는 저마다 고유한 격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는 그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합니다.
문제는 이 격별성이 '나'의 우월함으로 왜곡되고 변질될 때 발생합니다. 나의 특별함이 '나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바뀌는 순간, 분별심은 지혜의 칼이 아닌 혐오의 칼이 되어 타인을 향하게 됩니다. '나'라는 우월한 잣대에 비추어 '너'는 부족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단정 짓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스님께서는 분별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십니다. 오히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은 우리의 생존과 발전에 꼭 필요한 지혜의 능력입니다. 문제는 그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보며 존경하고 배울 점을 찾기보다, 그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 즉 '아수라'의 능력이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아수라를 항상 분노하고 싸우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이 아수라의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 찰 때, 우리는 끝없이 타인을 향해 투쟁하고 분노하며 혐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혐오를 만드는 '사회적 학습'과 그 치유의 길

혐오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민 교수님은 **혐오가 철저하게 '학습된 감정'**이며, 사회와 문화가 끊임없이 혐오를 생산하고 재배치한다고 단언합니다.


2-1. '훈습'이라는 이름의 마음 습관과 그 전염성

혐오는 대부분 부모님이나 사회가 은연중에 가르치는 가치관과 기준을 통해 습득됩니다. 👶 "이 정도는 해야 성공한 거야", "우리 동네는 저런 사람들과 달라", "우리나라 사람은 이래야 해" 같은 말들 속에서 우리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기준을 배우게 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타인을 '비정상', '틀린 존재'로 낙인찍는 습관을 들이게 됩니다. 불교 용어로는 이를 **'훈습(熏習)'**이라고 부릅니다. 향기가 옷에 배듯이, 무의식중에 스며들어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굳어지는 마음의 태도인 것이죠.
이 훈습된 혐오의 마음은 **'너 때문이야!'**라는 타인 탓하기 습관으로 아주 쉽게 나타납니다. 사회의 문제, 나의 불행, 집단의 어려움이 모두 '나와 다른 너' 때문에 벌어졌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이죠. 한민 교수님은 이 습관을 깨기 위한 작은 시도로 **"덕분입니다!"**라는 긍정의 언어로 바꾸는 캠페인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 비록 현실은 녹록지 않겠지만, 사회 전체가 조금씩 '너 탓'이 아닌 '네 덕분'이라는 언어 습관을 갖는다면 혐오의 물결을 막는 작은 둑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작은 언어 습관의 변화는 결국 내 마음의 방향을 '탓하기'에서 '감사하기'로 전환하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2-2. 마음을 넓히는 연습: '우리'라는 범주 확장하기

그렇다면 심리학적으로 이 혐오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두 가지 중요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가 아님을 인정하는 연습이죠. 🧘‍♀️ 나와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그들만의 역사와 합리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내 마음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하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라는 상위 범주로 타인과 나를 묶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너와 나는 세대가 다르지만,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야'라고 생각하거나,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지만, 같은 지구에 사는 인간이야'라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확장은 심리학적으로 **'초월적 범주(superordinate identity)'**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타인을 더 이상 '남'이 아닌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혐오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공감과 연대의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3. 고민 사연에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 심리학과 불교의 맞춤 처방 💌

이날 대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세 가지 고민 사연에 대한 보만 스님과 한민 교수님의 심도 깊은 상담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었죠.


3-1. "완벽해야만 사랑받는 줄 알았어요..." 완벽주의 대학생의 고민

첫 번째 사연은 어린 시절부터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완벽주의에 갇혀버린 20대 대학생의 이야기였습니다. 😥 완벽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는 이 마음의 병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한민 교수님은 이 완벽주의가 **'자신을 벌주는 행위'**라고 진단합니다. 완벽해지려 노력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이 정도는 해야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정욕구'나는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감정은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우리를 끝없는 자기 검열의 굴레에 가두게 만듭니다.
교수님은 완벽해지려 노력하는 대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나는 민트초코를 싫어하지만,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네 마음도 존중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자신을 향한 혐오와 미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애를 키우는 첫걸음입니다.
보만 스님은 이 고민을 불교적 관점에서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완벽주의는 결국 '나'라는 에고에 대한 강한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나는 부족하다'는 열등감과 동전의 양면을 이룹니다. 스님은 우리가 완벽해지기 위해 애쓰는 대신, 이미 온전한 존재임을 깨닫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괴로움은 모두 집착에서 오는 환상이며, 이 환상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3-2.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요?" 분노하는 직장인의 고민

두 번째 사연은 가족에게, 특히 아내에게 자꾸만 화를 내게 된다는 30대 직장인 남편의 고민이었습니다. 😠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많아졌을까?'라는 자책 속에서 그는 길을 잃고 있었죠.
보만 스님은 스님도 화를 낸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며, 중요한 것은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아니라 **'화를 내는 목적'**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사자처럼 화를 내되, 눈 풀처럼 겸손하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아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 사자처럼 맹렬하게 화를 낼 때는 단지 정의를 세우기 위함이어야 하고, 그 후에는 눈 풀처럼 겸손하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죠. 나의 화가 상대방을 상처입히는 목적없는 분노인지, 아니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정의로운 분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한민 교수님은 분노를 '내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으로 해석합니다. 😡 그러면서 질문을 던지죠. '그것이 정말 내 것인가? 내 영역인가?'라고 말이죠. 우리가 분노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사실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예: 배우자의 존경, 자녀의 순종, 직장에서의 인정)이 침범당했다고 느꼈을 때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 나의 소유물이었을까요?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분노가 허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분노가 정말 타당한지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3-3. "가면을 벗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요..." 공허한 중년의 고민

마지막 사연은 평생을 '가장'으로서의 역할만을 하며 살아와, 이제 인생의 이막을 앞두고 공허함을 느낀다는 50대 직장인의 이야기였습니다. 🍂 가면을 벗고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외로움과 불안함이 느껴지는 사연이었죠.
한민 교수님은 이것이 현대 사회의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고 진단합니다. 그동안 가족과 사회를 위해 달려온 삶의 목적이 사라지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이죠. 교수님은 다음 세대(자녀들)를 위한 삶에서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보만 스님은 불교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 스님은 가면을 굳이 벗을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면은 그저 '배역'으로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면 되는 것이고, 그 가면 뒤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나'는 사실 깨닫고 공부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불교에서는 '진정한 나'는 이미 청정하고 물들지 않는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겪는 공허함, 불안함,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마치 가면이 얼굴에 붙어있는 줄 아는 착각과 같습니다. 진짜 나는 그 가면들과 아무 상관없이 본래부터 온전한 존재였음을 깨닫는 공부가 바로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스님은 따뜻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4. 마무리하며: 마음의 아픔과 마주하는 용기 💖

보만 스님과 한민 교수님은 이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마음의 불편함과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를 갖자고 이야기합니다. 혐오, 분노, 공허함 같은 감정들을 회피하거나 숨기기보다는, 왜 그런 감정들이 생겼는지 그 원리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서로 다른 관점(심리학과 불교)이 만나 마음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던 이 대화야말로, 우리 사회가 혐오와 미움의 늪에서 벗어나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출발점이 아닐까요? 이 글이 여러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