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삶의 심연 응시하는 눈, 렘브란트의 `자화상`
강현철 논설실장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기였다. 해양 강국으로 국제무역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는 세계적 화가들을 배출했으며, 암스테르담 중심으로 새 회화흐름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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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기였다. 해양 강국으로 국제무역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는 세계적 화가들을 배출했으며, 암스테르담 중심으로 새 회화흐름이 탄생했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은 바로크 시대로 불리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힌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의 신앙을 다시 고조시키기 위해 미술을 활용했는데, 이 시기의 미술을 바로크 미술이라고 한다.

렘브란트 앞에는 '빛의 화가'라는 수사가 따라다닌다. 그는 빛의 명암을 활용해 그리고자 하는 대상속에 내재된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다. 독실한 칼빈교 신자인 그의 그림은 엄숙하다. 인간을 궤뚫고, 절제된 감정과 금욕을 중시한 칼뱅주의 정신을 반영한다. 빛의 명암은 이런 엄숙함에 깊이를 더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통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활용, 정교한 구도와 인물의 탁월한 묘사로 오묘한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탈리어어로 키아로는 빛, 오스쿠로는 어둠을 뜻한다. 17세기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처럼 바로크 시대 배경이 어둡고, 인물이 밝게 묘사된 작품들이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빛의 강도에 따라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작품 속 일부를 조명할 수 있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일 테네브로소', 즉 암흑 양식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렘브란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준 1632년작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La lecon d'anatomie du docteur Nicolaes Tulp)는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의 중요한 회화 양식인 그룹 초상화의 대표작이다. 밝음과 어둠의 빛 배합을 통해 강력하게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로가 2m가 넘는 대작으로 해부학 수업 모습을 담았다. 모자를 쓴 니콜라스 튈프 박사가 7명의 제자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야간 순찰'(De Nachtwacht)도 키아로스쿠로 기법이 활용됐다. '야경'(夜警)으로도 불리는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와 발렌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로, 암스테르담 시민사수대를 그렸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애용한 '스푸마토 기법'과 대비된다. '모나리자'에도 적용된 스푸마토 기법은 사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표현하는 수법이다.

렘브란트는1606년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방앗간집 주인의 아홉 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레이던대학 인문학부에 진학했지만 곧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역사화가로 유명한 야코프 반 스바넨뷔르흐 밑에서 도제식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1625년에 고향인 레이던으로 돌아와 아틀리에를 열었다. 한동안 친척이나 이웃 노인, 성경 등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다가 초상화가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1632년 암스테르담 의사협회에게 의뢰받은 '해부학 강의'가 호평을 받으면서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게 된다. 해부학 소재 자체는 당대에도 여러 번 그려진 적이 있으나 렘브란트처럼 인물들을 극적으로 배치시키고 생생한 표정을 담아낸 작품은 없었다.
이때부터 10년간은 그의 전성기였다. 1634년 명문가의 딸이었던 사스키아와 결혼했고,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제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평면적인 초상화로 만족하지 못한 렘브란트는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종교적 신화적인 소재를 따서 그리거나,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세속적인 성공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는 자화상을 무척 많이 그린 화가다. 에칭과 드로잉을 포함해 80여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그렸다. 심지어 죽은 해인 1669년에도 자화상을 남겼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통해 회화에서 최초로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의 말이다. 렘브란트에 자화상은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편력을 더듬어볼 수 있는 이정표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수단이었다. 인물의 날카로운 시선, 화려한 명암, 유려한 붓 터치를 통해 내면과 대화하고 의식을 확장시켜갔다. 마지막 자화상을 보자. 겹겹이 쌓인 물감의 균열과 서로 다른 속도의 붓 터치가 인간 존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희노애락, 삶의 깊은 심연을 응시하는 고독한 '영혼의 창(눈)'이 깊게 빛나면서 울림을 준다. 깊숙이 패여 있는 주름과 얼굴의 굴곡, 두손을 모아 쥔 자세에선 동양적 달관과 초월, 관조가 느껴진다. 조금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인생 후반기의 고난은 불후의 초상화를 남겼다. 아내를 잃고 경제적으로 파산한 그는 이 자화상을 그린 얼마 후 가족도, 돈도 없는 쓸쓸함 속에서 굴곡진 생을 마감했다. 렘브란트는 판화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다. 에칭 판화로 남겨진 자화상들도 적지 않다. 미술 평론가인 크리스토퍼 화이트는 "렘브란트는 직접적으로 심오하게 인간의 감정을 다눈 화가"라고 했으며, 독일 사회학자인 게오르크 짐멜은 "렘브란트는 삶의 매순간 영혼의 발현을 그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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