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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리스·로마 문화-그리스도 사상 통합 [박검진의종교·철학여행]

by 별꽃74 2025. 9. 11.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그리스·로마 문화-그리스도 사상 통합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그리스·로마 문화-그리스도 사상 통합 | 미주중앙일보

<20> 성 아우구스티누스 1 플라톤에 기반한 신학 정립 '고백록'은 신에 바치는 기도 서유럽 그리스도교 사상 형성

www.koreadaily.com

 
<20> 성 아우구스티누스 1
플라톤에 기반한 신학 정립
'고백록'은 신에 바치는 기도
서유럽 그리스도교 사상 형성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에 주목했고, 영혼불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부합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철학에 기반을 두고, 그리스도교 신학을 만들었다. 물론, 교부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는 인간의 지성과 앎은 선(善)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영향을 받았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지식은 선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 사상을 통합한 사상가였고,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으로 여긴다. 그의 저서인 '고백록'은 성경을 제외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자서전 문학의 효시와도 같은 작품이다. 그 책은 단순한 참회록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찬양과 기도 같은 책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 가장 생동감 있게 성찰한 책이기도 하다.  
 
고백록은 인간 내면의 지주가 되고 빛을 밝혀주는 '내면의 신의 사상'으로서 그 후, 서유럽 그리스도교 사상을 형성하는 힘이 되었다. 그는 한때 공부보다도 여성에 관심이 많아 18세에 미혼부가 되었다. 아들을 출생하고 나서야 수사학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성서의 내용에 실망하여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암브로시오 주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성경은 있는 그대로 해석뿐만 아니라, 영적인 해석도 해야 함을 배우고, 회개하고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마니교에서는 선 자체를 전능하신 신이 창조했다면, 이 세계에 왜 악(惡)이 함께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질문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 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의 논리를 따른다. 즉,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라는 것이다. 가령, 그림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결핍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악은 그림자처럼 실체인 빛이 가려질 때 일시적으로 선의 결핍과 빛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악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면, 이를 창조한 신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 있는 문제에 답을 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는 세계를 선하게 창조했지만, 이 자연주의 본성에 결핍이 생기면서 악이라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악의 조성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며, 인간 내면에 그 근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탐욕과 자유로운 의지의 잘못된 사용이라고 했다. 


https://lilys.ai/digest/5770948/5529042
인류를 괴롭힌 감염병의 역사와 위험성, 원인까지 [벌거벗은세계사] 

 

[#벌거벗은세계사] (2시간) 인류를 괴롭힌 감염병의 역사와 위험성, 원인까지❗ 세계를 극도의 공

이 영상은 인류 역사를 괴롭혀온 **감염병의 역사**와 그 위험성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한센병, 페스트, 매독, 콜레라, 결핵, 에볼라, 스페인 독감, 신종플루 등 다양한 감염병의 발병 원인, 전

lilys.ai

 

이 콘텐츠는 인류 역사를 뒤흔든 주요 감염병의 발생 원인과 확산 과정,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심층적으로 탐구합니다. 한센병, 페스트, 매독, 콜레라, 결핵, 에볼라, 스페인 독감 등 각 질병이 어떻게 인간의 무지, 욕망, 그리고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팬데믹을 일으켰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질병이 단순한 의학적 현상을 넘어 사회, 문화, 정치적 패러다임까지 변화시킨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수공통 감염병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경각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세균 감염병, 한센병

 

1.1. 한센병의 특징 및 중세 유럽 확산

  1. 세균 감염병의 시대적 배경:
    • 과거 인류는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며, 병의 원인을 모른 채 공포에 시달렸다.
    •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세균 감염병 중 하나는 그 처참함 때문에 '신이 내린 형벌'로 여겨졌다.
  2. 한센병의 명칭과 유래:
    • 성경에 기록된 '살이 썩는 병'은 한센병(나병)을 의미한다.
    • 과거에는 '나균' 또는 '나병'으로 불렸으며, 한자 '나(癩)'는 문둥병을 뜻하는 비하적인 표현이었다.
    • 현재는 환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피하기 위해 '한센병'으로 부른다.
  3. 한센병의 감염 경로 및 증상:
    • 한센균은 주로 호흡기나 상처를 통해 침투하며, 정확한 감염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초기에는 피부 발진이 생기며, 해당 부위의 감각이 없어지고 근육 움직임이 저하된다.
    • 심하면 손발이 썩어 떨어져 나가거나, 손가락 신경이 손상되어 갈고리 손이 되기도 한다.
    • 얼굴에 침범하면 얼굴이 비틀어지거나 한쪽 얼굴이 떨어져 나가는 등 다양한 피부 증상과 신경 감각 소실을 일으킨다.
  4. 중세 유럽에서의 한센병 확산:
    • 고대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한센병은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중세 유럽에 크게 퍼졌다.
    • 중동 지역에 이미 퍼져 있던 한센병이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5.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박해:
    • 유럽인들은 한센병의 원인을 알지 못해 '저주' 또는 '신의 벌'로 여겼다.
    • 환자들은 학대받았으며, 심지어 교회가 등을 돌려 환자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 교회 지도자들은 환자들에게 "너의 몸은 오염되고 더러운 옷으로 덮여 있다",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 환자들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마을 밖으로 쫓겨나 움막이나 동굴에서 고립되어 살아야 했으며, 치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 환자들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없었다.
  6. 한센병 환자에게 강요된 가혹한 규칙:
    • 환자들은 자신이 환자임을 스스로 알려야 했다.
    • 이를 위해 종을 들고 다니며 소리를 내어 자신이 환자임을 알렸다.
    • 구걸로 연명해야 했기 때문에 종이 없으면 나무 막대기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이 피할 수 있게 했다.
    • 물건을 살 때 손으로 만지거나, 흐르는 샘물에 손을 씻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통행이 많은 다리를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다.
    • 이러한 차별로 인한 고통이 병 자체의 고통보다 훨씬 심각했다.
  7. 한센병 환자 화형 사건:
    • 1321년 프랑스 남부에서는 흉년과 십자군 전쟁 이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한센병 환자들에게 돌렸다.
    • 환자들을 잡아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낸 후 산 채로 화형시켰다.


1.2.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리고 현대적 상황

  1. 성경 오역으로 인한 오해:
    • 중세 시대에 한센병을 신의 형벌로 믿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성경 때문이었다.
    • 구약 성경에서 '짜라 아트'라는 히브리어로 표현된 병은 '악성 피부병'을 의미했으나,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레프라' 또는 '레프로'라는 단어로 옮겨졌다.
    • 이로 인해 성경의 내용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오해가 심화되었다.
  2. 한센균 발견과 사회적 낙인:
    • 19세기 노르웨이의 아르마우어 한센 박사가 한센균을 발견했다.
    • 한센병은 항생제 투약으로 조기 치료 및 완치가 가능하며, 전 세계 인구의 95% 정도는 자연 면역을 가지고 있고, 전염력도 높지 않다.
    • 그러나 현재까지도 한센병 유행 지역에서는 사회적 낙인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3. 대한민국에서의 한센병 역사:
    •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천벌을 받은 자'로 취급되어 소록도에 격리되었다.
    • 갱생을 명목으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고, 사망 후에는 매장되지 못하고 화장되거나 해부학 실습에 사용되기도 했다.
    • 완치된 환자들도 마음에 받은 상처와 소외감은 계속되고 있다.
    • '한센병에 걸리면 아기 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괴담이 퍼지는 등 끔찍한 병으로 여겨졌다.
  4. 한센병의 역사적 의미:
    • 한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하며 인간을 괴롭혀온 오래된 균으로 자리매김했다.

2. 14세기 유럽을 휩쓴 '검은 죽음', 페스트

2.1. 페스트의 증상과 유럽 확산

  1. 페스트의 등장:
    • 14세기, 한센병 이후 유럽은 또다시 새로운 세균인 페스트의 등장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 페스트는 우리나라에서 법정 1급 감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2. 페스트의 증상:
    • 페스트균은 림프절을 통해 혈관으로 침투하여 주요 장기에서 출혈을 일으킨다.
    • 피부 출혈로 인해 몸이 검게 변하며, 심하면 팔다리 끝이 썩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 치료받지 못하면 60% 이상이 3~5일 만에 사망한다.
    • 신체 일부가 검게 썩어가며 고통스럽게 죽기 때문에 '검은 죽음', 즉 '흑사병'으로 불렸다.
  3. 페스트의 유럽 확산 과정:
    • 페스트균은 높은 치사율과 치명적인 감염력으로 단숨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 1346~1347년경, 몽골군이 크림반도의 남부 무역항 카파를 공격하면서 중앙아시아의 풍토병이던 페스트가 크림반도로 유입되었다.
    • 1347년 10월, 카파에 살던 이탈리아인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치면서 페스트균이 함께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 이후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 독일, 영국까지 퍼져나가 단 7년 만에 전 유럽을 휩쓸었다.
  4. 페스트의 빠른 확산 원인:
    • 쥐벼룩: 페스트균은 쥐벼룩을 통해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 당시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쥐와 벼룩이 많았기 때문에 빠르게 퍼졌다.
    • 비말 전파: 페스트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침과 함께 공기 중 비말로도 전파될 수 있어 확산 속도가 더욱 빨랐다.
  5. 페스트로 인한 피해:
    • 페스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의 80%가 목숨을 잃었다.
    • 피터 브뢰헬의 작품 '죽음의 승리'는 페스트가 휩쓸고 난 후의 참담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2.2. 페스트에 대한 대응과 사회적 변화

  1. 페스트의 원인에 대한 오해:
    • 당시 유럽인들은 한센병과 마찬가지로 페스트 역시 '저주' 또는 '신의 분노'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2. 종교적 고행:
    • 페스트균에 감염된 독실한 신자들은 신의 용서를 받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으로 때리는 '채찍질 고행'을 했다.
    • 이러한 고행은 위생 상태를 더욱 악화시켜 감염 확산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3. 비과학적인 치료법:
    • 당시 의사들은 사혈(피를 뽑는 것)이나 동물 치료(뱀 토막을 환부에 묶거나 대변을 바르는 것) 등 비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 이러한 치료법은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켰다.
    • 이는 당시 인류의 '무지'가 가장 큰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4. 페스트가 중세 유럽에 미친 영향:
    • 봉건 제도 몰락: 많은 인구가 사망하면서 일손이 부족해졌고, 농장주들은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지위가 상승하고 봉건 제도가 서서히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 종교 개혁의 단초: 신에게 아무리 기도해도 페스트가 끝나지 않자, 절대적이라 믿었던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이는 종교 개혁과 인본주의가 시작되는 단초를 마련했다.
    • 페스트는 중세 사회의 뿌리부터 변화시켰으며, 중세 시대의 종말을 가져왔다.

3.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감염병, 매독

3.1. 매독의 증상과 콜럼버스의 항해를 통한 확산

  1. 매독의 특징:
    • 매독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감염병으로, 트레포네마 팔리둠(Treponema pallidum)이라는 매독균에 의해 발생한다.
    • 매독균은 마치 코르크 마개처럼 조직을 파고들며, 면역 체계를 피해 계속 염증 유발 물질을 분비한다.
  2. 매독의 증상:
    • 피부에 고름이 가득한 물집이 둥근 띠 모양으로 번져나가고, 온몸에서 악성 피부 창이 발견된다.
    • 피부 괴양이 매화꽃과 비슷하다고 하여 '매화나무 매(梅)'자를 써서 '매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 매독의 감염 경로:
    • 후천성 매독은 90% 이상이 성 접촉에 의해 감염된다.
    • 선천성 매독은 엄마가 매독에 감염되었을 경우 아이에게 전염된다.
    • 선천성 매독에 걸린 아기는 심한 수포성 발진을 가지고 태어나며, 발병률 100%, 사산 또는 사망률 40%에 달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4. 15세기 유럽 매독 확산:
    • 15세기 유럽을 덮친 매독균은 약 500만 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 이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5.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 이론:
    •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질병 교환의 통로가 되었다.
    •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천연두와 바이러스가 전파되었고, 아메리카에서는 매독균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다.
  6. 매독균의 기원 추정:
    • 매독균은 원래 아메리카 대륙에 퍼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신대륙에서 목축되던 라마와 목동 간의 성적 접촉을 통해 라마가 가지고 있던 균이 인간에게 옮겨갔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라마에게 매독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7. 콜럼버스에 의한 매독균 유입 주장 근거:
    •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으로 귀환할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을 진찰한 스페인 의사의 기록이 근거가 된다.
    • 기록에 따르면 콜럼버스 제독이 섬 주민들과 관계를 가졌고, 귀환 후 전염력이 강한 병이 함대 내에 퍼졌으며, 선원 중 한 명이 스페인에서 매독으로 사망하면서 유럽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3.2. 매독의 유럽 전역 확산과 사회적 영향

  1. 이탈리아 침공과 매독 확산:
    • 1495년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이 매독 확산의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 프랑스군 병사들을 치료하던 의병들이 병사들에게서 매독 증상을 발견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매독균에 감염된 여인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 프랑스군 내에서 매독균이 퍼지면서 병사 수가 줄어들었고, 샤를 8세는 프랑스로 퇴각했다.
    • 이후 프랑스 시민의 3분의 1 정도가 매독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매독이 퍼졌다.
  2. 용병을 통한 전 유럽 확산:
    • 이탈리아 침공에 참여했던 프랑스뿐만 아니라 스페인, 스위스, 독일, 영국, 폴란드 등 다양한 나라의 용병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N차 감염'을 일으켜 전 유럽으로 매독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 당시 독일 책에는 군대나 대도시에서 많은 청년이 감염되었고, 피부병과 성병 전문 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묘사되어 있다.
  3. 유명인들의 매독 감염:
    • '전사 교황'이라 불렸던 율리우스 2세는 신체에 음란한 정형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으며, 신도들에게 발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은 매독 감염으로 인한 정신 이상 증상을 자신의 작품에 묘사하기도 했다.
    •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 착란 증상도 매독 때문으로 추정된다.
    • 에두아르 마네는 매독 후유증으로 발이 썩어 들어가 절단까지 했으며, 결국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4. 매독 증상을 숨기기 위한 문화:
    • 매독에 걸리면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숨기려 했다.
    • 매독균이 두피를 침범하여 궤양을 만들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을 숨기기 위해 '가발'이 유행했다.
    • 가발과 함께 향수와 파우더를 사용하여 냄새를 가렸다.
    • 반대로 매독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은 등과 앞가슴이 많이 파인 드레스를 입어 자신의 건강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5. 매독의 치료법과 확산:
    • 당시에는 매독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었다.
    • 환자들에게 수은을 바르거나 수은 증기를 마시는 '훈증 요법'이 사용되었으나, 이는 수은 중독을 일으켜 질식, 현기증, 정신 착란 등 부작용을 유발했다.
    • 심지어 피를 토하는 것을 '나쁜 성분이 빠져나오는 것'으로 믿기도 했다.
    • 매독은 '부끄러운 병'이라는 인식과 엉터리 치료법이 더해져 더욱 위험하게 확산되었다.
  6. 아시아로의 확산:
    • 콜럼버스 이후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매독은 인도를 거쳐 아시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 1521년경에는 명나라를 거쳐 조선까지 유입되어 불과 30년 만에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7. 매독에 대한 지역별 명칭:
    • 매독은 부끄러운 병이라는 인식 때문에 각 나라에서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 프랑스에서는 '나폴리 병',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 일본에서는 '중국 병', 조선에서는 '당창' 또는 '광창'이라고 불렀다.
  8. 매독균 기원에 대한 논쟁:
    • 매독균이 콜럼버스 때문에 퍼진 것인지, 아니면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구대륙에 존재했는지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여전히 논쟁 중이다.
  9. 현대의 매독 상황:
    • 현재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매독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 과거에는 오프라인 위주의 성관계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었으나, 온라인 만남이 활발해지면서 젊은 층에서 매독 환자가 크게 증가했다.
    •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모든 매독 환자를 보고하도록 관리 수준을 높였다.
    • 매독은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타고 확산되는 교활한 병원균이다.

4.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이 낳은 감염병, 콜레라

 

4.1. 콜레라의 특징과 인도에서의 발생

  1. 콜레라의 등장:
    •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감염병은 매독에서 끝나지 않고, 제국주의 시대의 정복 욕망과 무분별한 산업 발전의 욕망에서 비롯된 콜레라가 출현했다.
    • 콜레라는 1800년대 1차 팬데믹을 시작으로 150여 년 동안 무려 7번의 팬데믹을 일으켰다.
  2. 콜레라균의 특징:
    • 콜레라균은 채찍처럼 생긴 꼬리를 움직이며 물속에서 활동한다.
    • 오염된 물을 마시면 감염되며, 소장에 붙어 독소를 뿜어내 수분을 과도하게 배출시켜 지독한 설사를 유발한다.
  3. 콜레라의 증상:
    • 하루에 최대 20L에 가까운 설사를 하며, 이때 빠져나가는 수분의 양이 체중보다 많을 수 있다.
    • 물과 함께 전해질도 빠져나가 근력이 없고 기운이 없어진다.
    • 아프리카 콜레라 병원에는 환자들이 설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침대에 구멍이 뚫려 있는 특이한 침대가 있다.
    •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건강한 성인도 절반 정도가 사망하며, 노약자나 아이들은 거의 사망에 이른다.
  4. 콜레라와 인간의 욕망:
    • 콜레라균을 세상 밖으로 처음 퍼뜨린 것은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정복욕'이었다.
    • 원래 콜레라는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풍토병이었다.
    • 인도 주민들은 강물에 콜레라 환자의 옷을 세탁하고 배설물을 버리며, 심지어 그 물을 마시기도 했다.
    • 이러한 오염된 환경 속에서 인도 내에서 콜레라가 창궐하여 19세기 인도에서만 1,500만 명이 사망했다.

4.2.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콜레라 확산

  1. 영국군의 인도 식민지 지배와 콜레라 확산:
    •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지배하면서 콜레라에 걸린 영국군에 의해 콜레라가 중동,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까지 퍼져나갔다.
    • 당시 인도에서 군대를 이끌었던 헤이스팅스 후작의 기록에 따르면, 수많은 병사들이 콜레라로 쓰러져 행군이 끔찍했으며, 시체를 마차 밖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 유럽 전역의 콜레라 피해:
    • 1831년 유럽에 콜레라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여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총인구의 13% 이상이 사망했고, 헝가리에서는 최대 1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오스트리아에서 그려진 그림에는 콜레라에 걸린 지 한 시간 만에 몸이 파랗게 변하고 수척해진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이 여성은 한 시간 후에 사망했다.
  3. 영국에서의 콜레라 확산과 산업혁명:
    • 콜레라 팬데믹의 주요 원인이었던 영국은 콜레라가 자국까지 확산되면서 부메랑을 맞았다.
    • 영국에서 콜레라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
    • 산업혁명으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사람들은 비좁은 지하실 등에서 빽빽하게 모여 살았다.
    • 정화 장치가 없는 화장실이 거의 없어 배설물을 거리나 도랑에 버렸고, 런던 하수도에는 오물, 도살장 폐기물, 심지어 사체까지 쏟아져 들어갔다.
    • 이로 인해 1831년 런던에서만 2만 명이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이후 주기적으로 유행하여 1848년에는 약 1만 5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4. 콜레라의 비과학적인 치료법:
    • 당시 의사들은 콜레라 치료법으로 '코르크 마개'를 활용했다.
    • 한 의사는 콜레라 환자의 항문을 기름을 바른 코르크 마개로 막는 방법을 제안했으며, 미국에서도 시행되었다.
    •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배추 꼭다리로 항문을 막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 이러한 방법은 설사를 막아 오히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5. 존 스노우의 역학 조사와 콜레라 해결:
    •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에서 존 스노우 박사가 콜레라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
    • 그는 런던 소호 지도를 펼쳐 사망자들의 집을 표시했고, 브로드 가의 물 펌프 주변에 사망자가 집중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 워크 하우스와 양조장에서는 사망자 수가 적었는데, 워크 하우스는 자체 펌프가 있었고, 양조장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 존 스노우는 오염된 펌프가 콜레라의 원인이라고 판단하여 펌프 손잡이를 제거했다.
    • 그 결과 소호 지역에서 콜레라가 진정되었다.
    • 이 사건은 인류 최초의 '역학 조사'로 기록되며, 전파 경로를 체계적으로 추적한 사례이다.
    • 이후 사람들은 위생 관념을 갖게 되고, 식수와 하수를 분리하며 하수 처리장을 청소하는 등 위생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
    • 콜레라는 '위생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 콜레라 팬데믹의 주요 원인이었던 영국이 콜레라가 수인성 질병임을 직접 밝히게 된 것이다.
  6. 국제적 공조와 WHO의 전신:
    • 콜레라가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전염병에 대한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 1892년 '국제보건 헌장'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신이다.
    • 이때부터 인류는 질병에 끌려다니지 않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7. 현대의 콜레라 상황:
    • 현재도 콜레라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 20억 명 이상이 오염된 물을 마시고 열악한 위생 시설에 노출되어 콜레라균에 감염되고 있다.

5.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이 낳은 감염병, 결핵

 

5.1. 결핵의 특징과 산업혁명 시기 확산

  1. 결핵의 등장:
    • 산업혁명과 인간의 욕망이 낳은 또 다른 감염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결핵'이다.
    • 결핵균은 약 1만 년 전 인체에 침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센균과 함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세균이다.
  2. 결핵균의 특징:
    • 결핵균은 '산소'를 좋아한다.
    • 충분한 산소가 있어야 살 수 있으며, 주로 숨을 내쉴 때 공기 중 비말을 통해 전파된다.
  3. 결핵의 증상:
    • 폐결핵 증상으로는 심한 기침, 오한, 식은땀, 심하면 가래와 피를 토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 결핵균은 사람을 극도로 쇠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19세기에는 '소모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폐 외에도 림프선, 뼈, 뇌 등 신체 모든 부위에 침범할 수 있다.
    • 림프선에 감염되면 붓고 고름이 나오며 통증을 유발한다.
    • 뼈에 감염되면 결핵성 골수염이 나타나 뼈가 파이고 부러지며 신경통이나 감각 이상을 일으킨다. (고대 로마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남성 척추에서 결핵성 척추염 흔적 발견)
    • 뇌에 감염되면 뇌수막염을 일으켜 심한 두통, 의식 변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4. 산업혁명 시기 결핵 확산 원인:
    • 결핵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감염병이다.
    •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와 비좁은 공장에서 오염된 공기와 먼지를 마시며 일했다.
    • 특히 석탄을 채굴하는 광산에서는 환기가 안 되는 갱도에서 분진을 들이마시며 일했다.
    • 결핵균은 자외선에 약해 햇빛을 받으면 죽지만, 환기가 안 되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공장이나 갱도는 결핵균이 활개 칠 최적의 조건이었다.
    • 과도한 노동으로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와 면역 기능이 떨어져 발병률이 높았다.
    • 이 때문에 결핵을 '가난한 자들의 질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19세기 초 유럽 인구의 무려 3분의 1이 결핵으로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확산이 절정에 달했다.

 

5.2. 결핵에 대한 오해와 현대적 상황

  1. 결핵에 대한 낭만주의적 오해:
    • 결핵에 걸리면 살이 빠지고 핏기 없이 창백해지는 외모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미인상과 맞아떨어졌다.
    • 이러한 외모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결핵 환자를 따라 하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졌다.
    • 여성들은 꾸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피부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하고 입술을 빨갛게 연출하는 화장법을 사용했으며, 심지어 얼굴에 쌀가루를 끼얹기도 했다.
    • 이러한 창백한 모습은 미의 상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핵은 '하얀 페스트' 또는 '백사병'으로 불리며 진실이 왜곡되었다.
  2. 예술가들의 결핵 선망:
    •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결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 창백한 얼굴로 기침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진정한 천재의 모습' 또는 '아티스트 같다'고 여겨졌다.
    •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기왕 죽을 거라면 결핵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며 결핵을 낭만화했다.
    • 에밀리 브론테는 동생이 결핵을 앓는 것을 보고 "내 생각에 결핵은 아름다운 병이야"라고 말했으나, 나중에 자신도 결핵에 걸려 고통을 느꼈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곡가 쇼팽 등 유명 예술가들도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결핵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었기 때문에, 결핵에 걸린 후 폭발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아 '결핵에 걸리면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 이로 인해 결핵은 '천재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오해가 생겼다.
  3. 결핵의 치료법:
    • 당시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 결핵 환자를 위한 요양원이 설립되어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고 햇볕을 쬐게 하는 등의 치료를 했다.
    • 이는 균 자체를 치료하는 효과는 없었지만, 환자들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현대의 결핵 상황:
    • 결핵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고 있으며, WHO 발표에 따르면 2021년에 전 세계적으로 약 16만 명의 결핵 환자가 발생했다.
    •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이 결핵 발생률 1위이며, 해마다 2만 명 넘게 결핵에 걸리고 1,300명가량이 목숨을 잃고 있다.
    • 매일 10명이 결핵으로 사망하며, 사망 원인 중 감염병 분야에서는 코로나19 다음으로 높다.
    •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결핵균을 가지고 있다는 발표도 있었다.

6. 생물 무기로 악용되는 탄저균과 인수공통 감염병의 위협

 

6.1. 탄저균의 특징과 생물 무기화

  1. 탄저균의 특징:
    1. 탄저균은 막대 모양의 세균으로, '탄저(炭疽)'는 숯처럼 검은 부스러기라는 뜻이다.
    2. 감염되면 피부에 적갈색 돌기가 생기고 물집이 형성되며, 물집이 터지면서 딱지가 검어지고 부어오르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다.
  2. 코흐의 세균 발견:
    1. 로베르트 코흐는 1876년 탄저균이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2. 이어서 1882년에는 결핵균, 1884년에는 콜레라균 등을 차례로 밝혀내 미신적인 질병 인식을 타파하는 데 기여했다.
    3. 코흐는 이러한 공로로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3. 탄저균의 생물 무기화:
    1. 탄저균은 무기 개발에 악용되었다.
    2. 1, 2차 세계대전은 신무기의 실험장이 되었으며, 이때 탄저균을 활용한 무기가 개발되었다.
    3. 영국은 1943년 스코틀랜드 연안의 그린아드 섬에서 '채식주의자' 작전명으로 탄저균 폭탄 투하 실험을 했다.
    4. 섬에 60마리의 양을 풀어놓고 탄저균 폭탄을 떨어뜨린 결과, 양들은 몰살당했다.
    5. 영국군은 실험 성공을 기뻐했으나, 다행히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6. 이후 1986년 영국 정부는 탄저균 박멸을 위해 섬에 포르말데하이드를 섞은 바닷물을 1년 동안 뿌렸으나, 완전 박멸 여부는 불확실하다.
  4. 탄저균의 위험성:
    1. 포자 형성: 탄저균은 극한 상황에서 동그란 포자 모양으로 변하며, 사람이나 동물의 몸속에 더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2. 숙주가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생명을 유지하며, 포자 형태로 100년까지도 생존할 수 있다.
    3. 인수공통 감염균: 동물과 사람 모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공통 감염균이다.
    4. 분말화 용이: 균을 동결 건조시키면 손쉽게 분말로 만들 수 있어 냄새나 맛을 느끼지 않고 음식, 물 등에 투입이 가능하다.
    5. 강력한 살상력: 적은 양으로도 전쟁 중인 상대의 동물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
  5. 생물 무기 금지 협약과 탄저균 테러:
    1.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생물 무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1972년 '생물 무기 금지 협약'을 체결하여 국제적으로 생물 무기 사용을 금지했다.
    2. 그러나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을 악용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3. 9.11 테러 일주일 후 다섯 통의 편지가 발송되었고, 3주 후 두 통의 편지가 국회의원들에게 추가로 보내졌다.
    4. 편지에는 "당신은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리에겐 이 탄저균이 있다. 이제 당신은 죽는다. 두려운가. 미국의 죽음을, 이스라엘의 죽음을 알라는 위대하다"는 협박 문구와 함께 2g의 탄저균 분말이 들어 있었다.
    5. 이 사건으로 22명이 탄저병에 걸렸고, 그중 5명이 사망했다.
    6.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미국 육군 연구소의 미생물학자가 자살하면서 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았다.
    7. 탄저균 테러는 세균을 범죄나 테러에 악용할 위험성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8. 현재 탄저균뿐만 아니라 천연두, 페스트, 야토병 등 수십 종의 바이러스가 생물 무기로 무기화되어 인류에 대한 큰 위협이 되고 있다.

6.2. 인수공통 감염병의 시대와 에볼라 바이러스

  1. 인수공통 감염병의 개념:
    1. 코로나19와 원숭이 두창의 공통점은 '동물 유래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2. 이를 학술 용어로 '인수공통 전염병' 또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고 한다.
    3. '종의 장벽'이란 사람과 동물의 종류가 달라 동물의 질병이 사람에게 넘어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4. 그러나 돼지의 전염병도 인간에게 넘어올 수 있으며, 접촉 기회가 없는 동물에게서도 전파될 수 있다.
  2. 인수공통 감염병의 위험성:
    1. 동물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될 경우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치명성을 유발할 수 있다.
    2.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어야 생존하는데, 지구상에 70억 이상 대규모로 존재하는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매우 좋은 숙주이다.
    3. 동물의 몸속에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인류는 항상 인수공통 감염병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4. 현재와 미래에도 인수공통 감염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20년 동안 15건 이상의 감염병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5. 이는 우리가 '인수공통 감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3.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명성:
    1. 인수공통 감염병 중 치사율이 최대 90%에 달하는 감염병이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이다.
    2. 에볼라는 국내에서도 1급 법정 감염병으로 분류되어 관리될 정도로 위험하다.
  4. 에볼라의 증상:
    1. 에볼라의 특징적인 증상은 '출혈'이다.
    2. 혈관이 파열되고, 감염 후 5~7일간의 잠복기 후에 고열, 근육통, 두통, 구토, 심한 설사, 가슴 통증,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3. 혈압과 의식이 떨어지면서 혼수 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회복하지 못하면 피를 쏟는 출혈열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다.
    4. 모든 감염자가 피를 쏟는 것은 아니다.
  5. 1976년 콩고에서의 에볼라 발생:
    1. 1976년 콩고 민주 공화국의 양북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에볼라가 처음 시작되었다.
    2. 4살 남자아이 마발라가 말라리아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으나, 말라리아 치료제 투여 후에도 증상이 악화되어 고열, 구토, 설사, 탈수, 코와 잇몸 출혈을 보이다 사망했다.
    3. 마발라 사망 후 며칠 뒤 그의 가족들도 연이어 사망했다.
  6. 콩고의 장례 문화와 에볼라 확산:
    1. 마발라 가족이 연이어 사망한 이유는 콩고 특유의 '장례 문화' 때문이었다.
    2. 마발라의 아내와 엄마가 죽은 마발라의 입과 항문에서 남아 있던 음식물과 배설물을 손으로 긁어내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확산되었다.
    3. 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7. 병원 내 주사기 돌려쓰기로 인한 확산:
    1. 마발라와 가족의 죽음 이후 병원에는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넘쳐났고, 간호사들도 감염되었다.
    2. 조사단은 현장 조사 중 '주사기'가 폭발적 확산의 원인임을 밝혀냈다.
    3. 당시 병원에는 주사기가 5개밖에 없어 매일 300~600명의 환자들에게 돌려 사용했으며, 급한 상황에서는 소독 과정도 생략되어 감염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4. 1976년 콩고에서 318명이 감염되어 280명이 사망, 90%가 넘는 치사율을 기록했다.
  8. 수단에서의 에볼라 발생과 명명:
    1. 콩고에서 에볼라가 퍼져나가는 동안,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수단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2. 수단 은자라이프 병원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는 피를 흘리고 입과 코에서 대량의 혈액을 흘리는 증상을 보였다.
    3. 콩고와 수단에서 채취한 시료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를 과거에 본 적 없는 바이러스라고 결론 내렸다.
    4. 처음 증상을 보인 환자가 발병 직전에 '에볼라강' 유역을 여행한 것에 착안하여 '에볼라 바이러스'라고 이름 지었다.
    5. 콩고에서 발생한 첫 번째 케이스는 '에볼라 자이르', 수단에서 발생한 두 번째 케이스는 '에볼라 수단'으로 명명되었다.
  9.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
    1. 에볼라 바이러스는 '과일 박쥐'에게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2.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과일 박쥐를 즐겨 먹는 문화가 있으며, 이들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실제로 검출되었다.
  10. 박쥐가 바이러스 저장고인 이유:
    1. 박쥐는 포유류이며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1,200종 이상이 분포한다.
    2. 박쥐는 모기 등 해충을 잡아먹는 등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박쥐는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어 '바이러스 저장고'라고 불린다.
    4. 박쥐는 체온이 높아 바이러스에 영향을 덜 받으며, 특이한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어 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5. 먼 거리를 비행하는 특성 때문에 다른 동물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확률이 높다.
    6. 그러나 박쥐가 범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7. 인간의 개발로 인해 박쥐의 서식지인 숲이 파괴되면서 박쥐가 사람 쪽으로 접근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가까워진 원인이 되었다.
  11. 2014년 에볼라 재출현:
    1.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시기에 다시 나타나는데, 1970년대 아프리카 풍토병이었던 에볼라 바이러스가 2014년에 다시 출현했다.
    2. 서아프리카 기니에서는 6개월 동안 9천 명이 감염되어 절반이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다.
    3. 다시 등장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 콩고에서 발생했던 '자이르 바이러스'의 변종 돌연변이로 확인되었다.
    4. 이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전파되어 수습될 때까지 28,646명이 감염되었고, 그중 11,323명이 사망했다.
    5. 이때 퍼진 에볼라는 미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번져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2. 세계화와 에볼라 공포:
    1. 2014년 에볼라는 세계화 때문에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졌다.
    2. 당시 미국에서는 '에볼라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공포가 컸다.
    3. 가나에서 온 학생에게 검은 비닐봉투를 씌운 채 카트로 실어나르는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었고, 허위 신고로 캠퍼스 한 동이 통째로 격리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4. 만평에서는 라이베리아가 아닌 '라이브러리(도서관)'를 다녀왔다고 호소하는 소년을 격리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지나친 공포심을 풍자했다.
  13. 에볼라 종식 선언과 재발:
    1. WHO는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UN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발생지를 강력하게 통제, 방역 조치를 취했다.
    2. 2016년 에볼라가 잠잠해지자 WHO는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종식되었다고 선언했다.
    3. 그러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올해도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4. 인수공통 감염병은 언제든지 바이러스 변이를 통해 다시 나타날 수 있으며, 완벽한 정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7.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
 

6.1. 탄저균의 특징과 생물 무기화

  1. 탄저균의 특징:
    • 탄저균은 막대 모양의 세균으로, '탄저(炭疽)'는 숯처럼 검은 부스러기라는 뜻이다.
    • 감염되면 피부에 적갈색 돌기가 생기고 물집이 형성되며, 물집이 터지면서 딱지가 검어지고 부어오르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다.
  2. 코흐의 세균 발견:
    • 로베르트 코흐는 1876년 탄저균이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 이어서 1882년에는 결핵균, 1884년에는 콜레라균 등을 차례로 밝혀내 미신적인 질병 인식을 타파하는 데 기여했다.
    • 코흐는 이러한 공로로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3. 탄저균의 생물 무기화:
    • 탄저균은 무기 개발에 악용되었다.
    • 1, 2차 세계대전은 신무기의 실험장이 되었으며, 이때 탄저균을 활용한 무기가 개발되었다.
    • 영국은 1943년 스코틀랜드 연안의 그린아드 섬에서 '채식주의자' 작전명으로 탄저균 폭탄 투하 실험을 했다.
    • 섬에 60마리의 양을 풀어놓고 탄저균 폭탄을 떨어뜨린 결과, 양들은 몰살당했다.
    • 영국군은 실험 성공을 기뻐했으나, 다행히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 이후 1986년 영국 정부는 탄저균 박멸을 위해 섬에 포르말데하이드를 섞은 바닷물을 1년 동안 뿌렸으나, 완전 박멸 여부는 불확실하다.
  4. 탄저균의 위험성:
    • 포자 형성: 탄저균은 극한 상황에서 동그란 포자 모양으로 변하며, 사람이나 동물의 몸속에 더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 숙주가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생명을 유지하며, 포자 형태로 100년까지도 생존할 수 있다.
    • 인수공통 감염균: 동물과 사람 모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공통 감염균이다.
    • 분말화 용이: 균을 동결 건조시키면 손쉽게 분말로 만들 수 있어 냄새나 맛을 느끼지 않고 음식, 물 등에 투입이 가능하다.
    • 강력한 살상력: 적은 양으로도 전쟁 중인 상대의 동물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
  5. 생물 무기 금지 협약과 탄저균 테러:
    •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생물 무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1972년 '생물 무기 금지 협약'을 체결하여 국제적으로 생물 무기 사용을 금지했다.
    • 그러나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을 악용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9.11 테러 일주일 후 다섯 통의 편지가 발송되었고, 3주 후 두 통의 편지가 국회의원들에게 추가로 보내졌다.
    • 편지에는 "당신은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리에겐 이 탄저균이 있다. 이제 당신은 죽는다. 두려운가. 미국의 죽음을, 이스라엘의 죽음을 알라는 위대하다"는 협박 문구와 함께 2g의 탄저균 분말이 들어 있었다.
    • 이 사건으로 22명이 탄저병에 걸렸고, 그중 5명이 사망했다.
    •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미국 육군 연구소의 미생물학자가 자살하면서 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았다.
    • 탄저균 테러는 세균을 범죄나 테러에 악용할 위험성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 현재 탄저균뿐만 아니라 천연두, 페스트, 야토병 등 수십 종의 바이러스가 생물 무기로 무기화되어 인류에 대한 큰 위협이 되고 있다.

 

6.2. 인수공통 감염병의 시대와 에볼라 바이러스

  1. 인수공통 감염병의 개념:
    • 코로나19와 원숭이 두창의 공통점은 '동물 유래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 이를 학술 용어로 '인수공통 전염병' 또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고 한다.
    • '종의 장벽'이란 사람과 동물의 종류가 달라 동물의 질병이 사람에게 넘어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 그러나 돼지의 전염병도 인간에게 넘어올 수 있으며, 접촉 기회가 없는 동물에게서도 전파될 수 있다.
  2. 인수공통 감염병의 위험성:
    • 동물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될 경우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치명성을 유발할 수 있다.
    •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어야 생존하는데, 지구상에 70억 이상 대규모로 존재하는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매우 좋은 숙주이다.
    • 동물의 몸속에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인류는 항상 인수공통 감염병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 현재와 미래에도 인수공통 감염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20년 동안 15건 이상의 감염병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 이는 우리가 '인수공통 감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3.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명성:
    • 인수공통 감염병 중 치사율이 최대 90%에 달하는 감염병이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이다.
    • 에볼라는 국내에서도 1급 법정 감염병으로 분류되어 관리될 정도로 위험하다.
  4. 에볼라의 증상:
    • 에볼라의 특징적인 증상은 '출혈'이다.
    • 혈관이 파열되고, 감염 후 5~7일간의 잠복기 후에 고열, 근육통, 두통, 구토, 심한 설사, 가슴 통증,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 혈압과 의식이 떨어지면서 혼수 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회복하지 못하면 피를 쏟는 출혈열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다.
    • 모든 감염자가 피를 쏟는 것은 아니다.
  5. 1976년 콩고에서의 에볼라 발생:
    • 1976년 콩고 민주 공화국의 양북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에볼라가 처음 시작되었다.
    • 4살 남자아이 마발라가 말라리아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으나, 말라리아 치료제 투여 후에도 증상이 악화되어 고열, 구토, 설사, 탈수, 코와 잇몸 출혈을 보이다 사망했다.
    • 마발라 사망 후 며칠 뒤 그의 가족들도 연이어 사망했다.
  6. 콩고의 장례 문화와 에볼라 확산:
    • 마발라 가족이 연이어 사망한 이유는 콩고 특유의 '장례 문화' 때문이었다.
    • 마발라의 아내와 엄마가 죽은 마발라의 입과 항문에서 남아 있던 음식물과 배설물을 손으로 긁어내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확산되었다.
    • 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7. 병원 내 주사기 돌려쓰기로 인한 확산:
    • 마발라와 가족의 죽음 이후 병원에는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넘쳐났고, 간호사들도 감염되었다.
    • 조사단은 현장 조사 중 '주사기'가 폭발적 확산의 원인임을 밝혀냈다.
    • 당시 병원에는 주사기가 5개밖에 없어 매일 300~600명의 환자들에게 돌려 사용했으며, 급한 상황에서는 소독 과정도 생략되어 감염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 1976년 콩고에서 318명이 감염되어 280명이 사망, 90%가 넘는 치사율을 기록했다.
  8. 수단에서의 에볼라 발생과 명명:
    • 콩고에서 에볼라가 퍼져나가는 동안,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수단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 수단 은자라이프 병원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는 피를 흘리고 입과 코에서 대량의 혈액을 흘리는 증상을 보였다.
    • 콩고와 수단에서 채취한 시료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를 과거에 본 적 없는 바이러스라고 결론 내렸다.
    • 처음 증상을 보인 환자가 발병 직전에 '에볼라강' 유역을 여행한 것에 착안하여 '에볼라 바이러스'라고 이름 지었다.
    • 콩고에서 발생한 첫 번째 케이스는 '에볼라 자이르', 수단에서 발생한 두 번째 케이스는 '에볼라 수단'으로 명명되었다.
  9.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
    • 에볼라 바이러스는 '과일 박쥐'에게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과일 박쥐를 즐겨 먹는 문화가 있으며, 이들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실제로 검출되었다.
  10. 박쥐가 바이러스 저장고인 이유:
    • 박쥐는 포유류이며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1,200종 이상이 분포한다.
    • 박쥐는 모기 등 해충을 잡아먹는 등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박쥐는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어 '바이러스 저장고'라고 불린다.
    • 박쥐는 체온이 높아 바이러스에 영향을 덜 받으며, 특이한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어 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 먼 거리를 비행하는 특성 때문에 다른 동물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확률이 높다.
    • 그러나 박쥐가 범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 인간의 개발로 인해 박쥐의 서식지인 숲이 파괴되면서 박쥐가 사람 쪽으로 접근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가까워진 원인이 되었다.
  11. 2014년 에볼라 재출현:
    •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시기에 다시 나타나는데, 1970년대 아프리카 풍토병이었던 에볼라 바이러스가 2014년에 다시 출현했다.
    • 서아프리카 기니에서는 6개월 동안 9천 명이 감염되어 절반이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다.
    • 다시 등장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 콩고에서 발생했던 '자이르 바이러스'의 변종 돌연변이로 확인되었다.
    • 이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전파되어 수습될 때까지 28,646명이 감염되었고, 그중 11,323명이 사망했다.
    • 이때 퍼진 에볼라는 미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번져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2. 세계화와 에볼라 공포:
    • 2014년 에볼라는 세계화 때문에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졌다.
    • 당시 미국에서는 '에볼라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공포가 컸다.
    • 가나에서 온 학생에게 검은 비닐봉투를 씌운 채 카트로 실어나르는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었고, 허위 신고로 캠퍼스 한 동이 통째로 격리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 만평에서는 라이베리아가 아닌 '라이브러리(도서관)'를 다녀왔다고 호소하는 소년을 격리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지나친 공포심을 풍자했다.
  13. 에볼라 종식 선언과 재발:
    • WHO는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UN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발생지를 강력하게 통제, 방역 조치를 취했다.
    • 2016년 에볼라가 잠잠해지자 WHO는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종식되었다고 선언했다.
    • 그러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올해도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 인수공통 감염병은 언제든지 바이러스 변이를 통해 다시 나타날 수 있으며, 완벽한 정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7.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

7.1. 스페인 독감의 발생과 치명적인 증상

  1. 스페인 독감의 규모:
    • 당시 전 세계 인구 18억 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5억 명이 감염되었고, 최소 5천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 이러한 엄청난 사망자 수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의학적 홀로코스트'라고 불린다.
  2. 스페인 독감의 시작:
    • 스페인 독감의 시작 지점은 100%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미국 캔자스주를 지목한다.
    • 1918년 2월, 캔자스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해스켈 카운티에서 마을 청년들이 연이어 쓰러지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 이들의 공통점은 고열, 기침, 심한 두통과 몸살 등 인플루엔자 증상이었다.
    • 당시 지역 의사 로링 마이너는 이 병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여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는 스페인 독감이 보고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3. 스페인 독감의 치명적인 증상:
    • 스페인 독감은 일반적인 독감과 달리 '청색증'이라는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났다.
    • 폐 안이 염증 물질로 가득 차 호흡을 못 하게 되면서 몸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증상이다.
    • 특히 '헬리오트로프 청색증'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보라색에 가까운 청색 꽃인 헬리오트로프처럼 환자들의 얼굴색이 변하다가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심한 염증으로 폐 일부가 터져 가슴 밑부분에 공기 주머니가 생기기도 했다.
    • 눈, 입, 귀, 코 등에서 출혈이 발생하는 끔찍한 증상도 나타났다.
    • 당시 의사의 편지 기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감기처럼 보이지만 몇 시간 뒤 귀에서부터 청색증이 시작되어 얼굴 전체로 퍼지고, 백인과 유색인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며, 겨우 몇 시간 뒤 죽음에 이른다고 묘사되어 있다.
  4. 스페인 독감의 전 세계 피해:
    • 미국에서는 55만 명이 사망하여 당시 인구의 0.5%를 차지했다.
    • 인도에서는 1,670만 명이 사망하여 사망률이 5.2%에 달했다.
    •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많은 사람이 숨졌으며, 사망률은 5.8%였다.


7.2.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의 확산

  1. 1차 세계대전의 결정적 역할:
    •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를 강타한 데에는 '1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스페인 독감의 정식 명칭은 '1918년 인플루엔자'이며, 1918년은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였다.
  2. 전쟁을 통한 확산 과정:
    • 미국 캠프 펀스에서 시작된 독감은 미국 전역의 다른 군사 캠프로 확산되었다.
    • 이후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서부 전선 국가들로 퍼져나갔다.
  3. 참호전의 영향:
    • 전쟁 중 '참호전'은 스페인 독감 확산의 주요 원인이었다.
    • 참호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고 습도가 높은 불결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기 쉬웠다.
    • 전쟁 중 영양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해 병사들의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 전파와 질병 유발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4. 파병 군인들을 통한 전 세계 확산:
    • 1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에서 파병된 군인들이 모여 감염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독감을 퍼뜨리는 최악의 조건이 되었다.
    • 서부 전선 진입 한 달 만에 스페인 독감은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유입되었다.
  5. 조선에서의 스페인 독감:
    • 당시 조선에서는 스페인 독감을 '서바나 감기'라고 불렀다.
    • 조선 인구 740만 명 중 지인 중에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며, 대부분의 학교가 휴교하고 회사는 휴업하는 등 민심이 흉흉하고 사회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 김구 선생도 백범일지에 스페인 독감에 걸려 고생한 기록이 남아 있다.
    • 당시 신문 기사에는 집에서 기르는 개들도 유행 감기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릴 정도로 전파력이 강했다.
  6. 바이러스의 진화와 피해 규모:
    • 1918년 후반, 바이러스가 계속 돌면서 돌연변이가 생겨 카리브해, 브라질,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폭발적으로 전파되었다.
    • 1차 세계대전으로 숨진 사람이 약 1,5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스페인 독감으로 숨진 사람은 5천만 명에 달하여 전쟁보다 훨씬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 이는 20세기 최악의 피해를 유발한 팬데믹으로 알려져 있다.


7.3. 스페인 독감의 사회적 영향과 종식

  1. 유명인들의 감염:
    • 미국 윌슨 대통령도 스페인 독감에 걸렸으며, '키스'를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드바르트 뭉크 등 유명 화가들도 감염되었다.
    • 뭉크의 '스페인 독감의 자화상'은 감염 전후의 몰골이 심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2. 젊은 층의 높은 사망률과 사이토카인 폭풍:
    • 스페인 독감 희생자 중 대부분은 65세 이하였고, 특히 20~45세의 건장한 건강한 사람들이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했다.
    • 이는 '사이토카인 스톰(폭풍)' 때문이었다.
    • 사이토카인은 면역을 조절하는 필수 물질인데, 젊은 사람들은 면역력이 너무 좋아 외부 바이러스에 강렬하게 반응한다.
    • 이 면역 세포들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폐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3.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의 유래:
    • 미국 캔자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게 된 것은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 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전시 통제법에 따라 불리한 전황 보도를 금지하여 독감 발생을 보도하지 못했다.
    • 반면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은 언론 통제 없이 독감 발생 현황을 최초로 보도했다.
    • 1918년 5월 22일 스페인 일간지 ABC 신문에 독감 유행 기사가 실렸고, 이후 후속 보도들이 이어지면서 스페인이 독감의 진원지로 오해받게 되었다.
    • 결국 전 세계 사람들에게 '스페인에서 처음 발병 보도된 병'이라는 인식이 퍼져 '스페니시 플루'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4. 스페인 독감 시대의 사회상:
    • 영미권에서도 언론 통제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스페인 독감이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다.
    • 1918년 미국 뉴욕 신문에는 기침하는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만화가 실릴 정도로 극심한 공포가 있었다.
    • 마스크 착용: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 착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 거즈를 여러 겹 겹쳐 만든 마스크를 사용했으며, 미국 오리건에서는 신문 광고를 통해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고했다.
      • 미국 경찰들이 단체로 마스크를 쓰고 활동했으며, 메이저리그 심판, 투수, 타자도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진행했다.
      • 심지어 고양이마저 마스크를 쓴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04년 전의 이러한 모습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유사하다.
    • 위생 캠페인: '침 뱉지 마라(No Spitting)'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 침 안에 고농도의 바이러스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코로나19 때도 강조했던 모습과 비슷하다.
      • 환기, 소독 등도 강조되었다.
    • 사회적 비극: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는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관이 부족해 시체가 며칠씩 집에 방치되기도 했다.
      • 장사꾼들은 가격을 6배나 올려 폭리를 취했다.
      • 공포심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 켄터키주 농촌 지역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 심지어 스페인 독감에 걸린 부모가 남겨질 자식들을 걱정하여 자식을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5. 스페인 독감의 비과학적인 치료법:
    • 스페인 독감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위스키'가 효과가 있다는 헛소문이 돌았고, 미국에서 위스키 가격이 폭등했다.
    • 1918년 뉴욕 시라큐스 지역의 주류 상점들은 신문 1면에 '스페인 인플루엔자 퇴치를 위해 추천'이라는 광고를 냈다.
    • 당시 의사들도 위스키를 직접 권하기도 했으며, 덴마크, 캐나다, 폴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도 술이 독감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6. 스페인 독감의 소멸:
    • 스페인 독감은 확산 시기가 극렬하게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 소멸한 이유는 100% 밝혀지지 않았지만, '집단 면역' 형성으로 바이러스가 소멸 단계로 갔다는 인식이 많다.
    • 또한, 감염된 사람들이 사망하면서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과정으로 갔다고 추론된다.


7.4.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와 신종플루

  1.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 규명:
    • 당시에는 스페인 독감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지조차 몰랐다.
    • 스페인 독감이 사라지고 87년이 흐른 2005년에 그 실마리가 밝혀졌다.
    • 미국 병리학 연구소의 테리사 타마라 박사와 병리학자 요한 틴은 알래스카에서 정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 1997년 연구자들은 알래스카의 얼음 땅을 깊게 파서 죽은 감염자의 시체를 찾아냈고, 잘 보존된 시체의 폐에서 바이러스 감염 조직을 떼어냈다.
    • 숙주가 죽어도 바이러스는 복제하지 못하지만, 적정 온도(자연 냉동고)에서 수백 년간 유지될 수 있다.
    • 8년간의 연구 끝에 2005년 마침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정체는 '조류독감과 인체 독감이 섞인 H1N1형 바이러스'였다.
  2. 신종플루의 부활:
    •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원인이 규명되면서 감염병 역사가 일단락되었다고 믿었으나, 1920년에 사라진 줄 알았던 스페인 독감이 2009년에 '신종플루'로 다시 부활했다.
    • 신종플루는 전 세계적으로 15만 명에서 최대 57만 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전파력은 매우 강했지만, 치사율은 0.0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3.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
    • 스페인 독감과 신종플루는 H1N1이라는 같은 족보를 가진 바이러스이지만, 같은 바이러스는 아니고 '먼 친척' 개념이다.
    •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늘 새로운 변이가 나타난다.
    • 바이러스 종류에는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가 있다.
    • DNA 바이러스는 복제 시 에러가 발생하면 바로 교정하지만, RNA 바이러스(코로나 바이러스 등)는 교정 시스템이 없다.
    • 바이러스 표면의 '헤마글루티닌'은 사람 몸으로 들어오기 위한 열쇠 역할을 하는데, 이들이 몸 안에서 섞이면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
    • 따라서 인플루엔자의 돌연변이는 끝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 매년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는 이유도 이러한 바이러스의 끊임없는 변이 때문이다.
    • 현재는 한 번 맞으면 평생 효과가 지속되는 '유니버설 백신'이 연구 중이다.
  4. 신종플루의 전파 경로:
    • 스페인 독감은 인간과 조류가 섞인 바이러스였지만, 2009년 신종플루는 '돼지'에서 왔다.
    • 돼지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 조류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파되는 경우는 드물고, 사람 간 전파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 이는 조류와 사람의 바이러스 열쇠(헤마글루티닌) 구멍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러나 돼지는 조류 바이러스와 사람 바이러스를 모두 잘 받아들여, 돼지 몸속에서 바이러스들이 섞여 새로운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수 있다.
    • 2009년 신종플루는 조류, 돼지, 사람이 콜라보하여 만들어진 바이러스였다.
    • 바이러스에 걸린 돼지가 식탁에 올라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 증상이 있을 경우 도축이 안 되며, 수시로 검사하여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인플루엔자 감염은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