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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하버마스, 비판으로서의 철학 [생활속의철학]

by csr1974m 2025. 9. 13.

위르겐 하버마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지금까지 ‘철학의 숲’에 소개된 철학자 가운데 살아있는 인물로는 처음 등장하는 현존 철학자다. 단지 생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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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하버마스 

출생   1929.6.18.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지금까지 ‘철학의 숲’에 소개된 철학자 가운데 살아있는 인물로는 처음 등장하는 현존 철학자다. 단지 생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펜을 놓지 않은 현역이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업데이트가 잘 된 [하버마스 포럼]에서 쉽게 확인된다. 지금은 괴테 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1994년 퇴직한 이후에도 그는 거의 해마다 책을 출간했다. 젊은 시절부터 그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자이트(Die Zeit)]를 비롯해 영향력 있는 매체에 현안 문제를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 현역이라고나 할까?

철학은 위대한 전통을 거부함으로
그 전통에 충실해진다

 
하버마스의 최근 이력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197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시가 수여하는 헤겔 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컬리지에서 주는 율리시스 메달을 받기까지 모두 14차례나 상을 받았다. 유럽에서 주는 권위 있는 상은 대체로 지방자치단체나 대학에서 제정한 것이다. 상의 이름은 그 도시 또는 그 대학이 배출한 인물에서 따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슈투트가르트는 철학자 헤겔이 태어난 곳이며,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UCD)는 [율리시스]를 쓴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나온 대학이다. 2000년대 들어 지난 10년간 7차례를 수상했으니 거의 해마다 상을 받은 셈이다. 다작만큼이나 상복도 유난히 많은 철학자다.
 
잠깐! 철학자가 상을 받는 것이 그렇게 큰 영예인가? 일찍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상 중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벨 문학상(노벨상에는 철학상은 없다)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를 분류하고 문학을 등급 매기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하지 않았는가? 해마다 빠지지 않고 책을 내놓듯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상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때 방송사에서 주는 가요대상을 해마다 휩쓸었던 가수 조용필도 후배에게 양보하겠다며 모든 방송사에서 주는 상을 거부하는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하버마스는 상을 소통하는 공간으로 삼았다. 물론 상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영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하버마스에게 상을 받고, 축하를 받고, 연설을 하는 것은 그와 관련된 공동체와 의사소통을 하는 하나의 행위다. 하버마스의 수상 연설은 흔히 보는 감사와 칭송의 장이 아니다. 그 담화 공동체에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다. 좀 딱딱한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하나의 발화 행위(speech act)다. 거기에는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동체가 있다. 그 담화 공동체에 듣기 좋은 말이나 잔뜩 늘어 놓는 것은 상을 주는 사람도 상을 받는 사람도, 그리고 축하하러 오는 청중들에게도 맥 빠지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 20세기 후반 서양 지성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근대-탈근대 논쟁의 불씨도 1980년 프랑크푸르트 시가 주는 아도르노 상 수상연설에서 비롯되었다. ‘실패했지만 끝나지 않은 근대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에서 하버마스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를 싸 잡아서 신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이 수상연설에서 하버마스는 그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선배 학자인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서 제기한 근대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멈추어 서야 할 것이 아니라 계속 추진되어야 하는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근대 프로젝트가 미몽을 깨뜨린 계몽이 아니라 그 자체가 미몽이라는 아도르노의 지적에 동의한다. 이성이 도구화되었다는 진단에도 의견을 같이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성이 기획한 계몽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보기에 근대는 전근대에 비해 개혁적이고 건강한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는 전근대적인 야만이 독버섯처럼 남아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탈근대의 이름으로 근대 프로젝트가 지닌 개혁적 추동력을 멈춰 세우려는 새로운 보수주의를 경계했고, 그 구체적 인물로 푸코와 데리다 등을 콕 집어서 거론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하버마스 식 강연이다. 그의 강연은 주례사나 잔칫집에서 덕담을 나누는 수준의 강연이 아니다. 유탄을 맞은 것은 신 보수주의자로 낙인 찍힌 푸코와 데리다였지만, 하버마스가 직접 겨냥한 대상은 작고한 그의 선배 아도르노가 아니었을까? 아도르노에게서 비판으로서의 철학적 전통을 물려받은 하버마스에게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같이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철학은 그의 위대한 전통을 거부함으로써 그 전통에 충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근대의 기획은 실패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버마스와 푸코, 그리고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뒷 이야기를 잠시 더 해보자. 지난 1960년대 실증주의 논쟁을 시작으로 해서 크고 작은 논쟁을 주도해 온 하버마스 식 철학 하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신을 신종 보수주의자로 규정한 하버마스의 글을 읽고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푸코와 하버마스의 대담을 기획했지만, 갑작스런 푸코의 죽음으로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의 대담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푸코가 사망했을 때, 하버마스는 푸코를 추모하는 글을 통해서 자신이 푸코를 상당 부분 오해했을지 모른다고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나 탈근대 논쟁에 대한 하버마스의 집약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그는 다시 푸코를 두 장에 걸쳐 통렬하게 비판했다. 물론 죽은 푸코는 말이 없다. 하기는 푸코 철학을 자주 인용한 하버마스와는 달리, 푸코는 생전에도 하버마스 철학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적이 없다. 죽은 푸코 편에서 보면 병 주고 약 주기, 또는 약 주고 병 주기 식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철학 하는 방식이다.
 
데리다와는 행복한 화해를 했다. 한 학술대회에서 데리다와 만난 하버마스는 먼저 그에게 접근했고, 두 사람은 완벽한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에서 각각 열린 학술대회에 상대방을 초대했고, 미국 9.11 사건 이후에는 ‘테러시대의 철학’이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뉴욕 철학자가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각 따로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지만 그들 사이에 신뢰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하버마스는 자신과 푸코 사이의 탈근대 논쟁은 논쟁이라기보다는 비판적 리뷰에 가깝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맞다. 논쟁은 쌍방향이 되어야 성립하는 법이다. 하버마스는 또 비판적 리뷰에 대해 푸코가 기뻐할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쨌든 그것이 하버마스 식의 철학 하기다. 그는 앞 선 시대의 철학자든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철학자든 상관하지 않고 말 걸기를 시도한다. 그들의 생각을 자기 식으로 재정리해서 비판한다. 그것은 강연을 통해서든, 저술을 통해서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버마스가 쓴 책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또 연구 분야가 다른 수 많은 사상가들이 하버마스의 틀 안에서 분해되고 재구성된다. 하버마스가 말을 거는 인물은 칸트와 헤겔니체와 같이 고전적 지위에 오른 철학자로 국한되지 않는다. 또 푸코와 데리다와 같이 그와 같은 동년배의 세계적 명성을 가진 인물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세계적 명성에서 그보다 뒤지는 인물도 조리대에 오르고, 때로는 그가 직접 가르친 제자도 등장한다.

"다년생 식물처럼 끈질기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체계적으로 답할 것"

 
하버마스의 관심은 좁은 의미의 철학에 갇혀있지 않다. 언젠가 하버마스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그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학자로 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기 전에는 5년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고정적으로 서평을 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해서 세계 유수의 매체에 기고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소개할 때는 보통 철학자이며 사회학자, 그리고 실천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자리를 매긴다. 이러한 폭 넓은 관심 때문에 그의 연구영역은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법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교문제와 국제평화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우물만 파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로 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최근의 학문 추세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많은 분야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을까? 게오르게 리히트하임(George Lichtheim)이 “하버마스의 동년배들이 자기 전공분야의 한 구석을 힘겹게 정복하고 있을 때 과학이론, 지식사회학, 형이상학 등 방대한 서구의 고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들을 하나의 새로운 지적 체계로 재구성해냈다”고 글을 쓴 것이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 1971년 [인식과 관심]이 출간된 때였다. 물론 그때는 하버마스가 독일 해석학에서 영미 분석철학의 성취를 접목한 ‘언어학적 전회’ 또는 ‘화용론적 전회’라고 불리는 본격적인 자기 철학을 수립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리히트하임의 그때 그 서평을 지금 그대로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버마스를 인용할 때마다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형용구를 그는 40년 동안 달고 다녔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건강이 유난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의 두뇌가 천재적이기 때문에? 아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버마스는 선천성 언청이다. 다섯 살 때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 2004년 교토 상 수상연설에서 그는 개인적 체험과 사상을 접목해서 강연을 해달라는 주최 측의 요구에 따라 그의 자전적 사상 편력을 강연한 바 있다. 그는 불명확한 발음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 아이들의 심한 놀림을 받았고, 요즈음 말로 말하면 ‘왕따’도 당했다고 했다. 그가 담화(Diskurs) 행위를 강조하는 철학자가 된 것은 심한 아이러니다.
 
하버마스는 머리를 순식간에 때리는 영감을 붙잡아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설파하는 천재형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무오류성을 추구하는 철학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모든 지식의 최종 근거(Letzte Begrundung)가 되는 철학을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철학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자신이 철학의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했다고 자부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또는 적어도 자신이 제시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언젠가는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던 철학자들도 있다. 하버마스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이 항상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이 반박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다면, 그렇게 많은 이들의 주장을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버마스의 관심은 좁은 의미의 철학에 갇혀있지 않다. 언젠가 하버마스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그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학자로 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기 전에는 5년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고정적으로 서평을 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해서 세계 유수의 매체에 기고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소개할 때는 보통 철학자이며 사회학자, 그리고 실천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자리를 매긴다. 이러한 폭 넓은 관심 때문에 그의 연구영역은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법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교문제와 국제평화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우물만 파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로 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최근의 학문 추세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많은 분야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을까? 게오르게 리히트하임(George Lichtheim)이 “하버마스의 동년배들이 자기 전공분야의 한 구석을 힘겹게 정복하고 있을 때 과학이론, 지식사회학, 형이상학 등 방대한 서구의 고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들을 하나의 새로운 지적 체계로 재구성해냈다”고 글을 쓴 것이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 1971년 [인식과 관심]이 출간된 때였다. 물론 그때는 하버마스가 독일 해석학에서 영미 분석철학의 성취를 접목한 ‘언어학적 전회’ 또는 ‘화용론적 전회’라고 불리는 본격적인 자기 철학을 수립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리히트하임의 그때 그 서평을 지금 그대로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버마스를 인용할 때마다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형용구를 그는 40년 동안 달고 다녔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건강이 유난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의 두뇌가 천재적이기 때문에? 아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버마스는 선천성 언청이다. 다섯 살 때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 2004년 교토 상 수상연설에서 그는 개인적 체험과 사상을 접목해서 강연을 해달라는 주최 측의 요구에 따라 그의 자전적 사상 편력을 강연한 바 있다. 그는 불명확한 발음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 아이들의 심한 놀림을 받았고, 요즈음 말로 말하면 ‘왕따’도 당했다고 했다. 그가 담화(Diskurs) 행위를 강조하는 철학자가 된 것은 심한 아이러니다.
 
하버마스는 머리를 순식간에 때리는 영감을 붙잡아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설파하는 천재형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무오류성을 추구하는 철학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모든 지식의 최종 근거(Letzte Begrundung)가 되는 철학을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철학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자신이 철학의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했다고 자부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또는 적어도 자신이 제시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언젠가는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던 철학자들도 있다. 하버마스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이 항상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이 반박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다면, 그렇게 많은 이들의 주장을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철학은 비판으로서의 철학이 될 때,
훨씬 큰 역할과 할 일이 주어진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파국을 경험한 전쟁 후 세대다. 사춘기 시절 전쟁을 경험했고, 나치 독일이 패망한 1945년에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을 마치고 본 대학에 들어갔다. 하버마스의 눈에 비친 독일 사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쟁 이전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도덕적 파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거기에 없었다. 철학적 분위기도 그랬다. 당시 유행처럼 번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 속에서 전쟁 전과 다름 없이 하이데거 철학은 여전히 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전쟁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대체 독일이 전쟁 기간 무슨 일을 했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불감증의 원인을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은 비판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찾았다. 부당한 권위의 정당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단지 주어진 권위에 순응한 채, 그것을 도구적 합리성과 결합할 때 일어난 참극이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 학살로 나타났다면, 이성이 비판적 측면을 상실하고 도구적 측면과 다시 결합할 때 또 어떤 비극이 일어날 것인가? 하버마스는 청년 시절 경도되었던 하이데거 철학에서 벗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 합류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으로서의 철학’이라는 생각을 그는 선배 세대와 공유했다.
 
비판으로서의 철학이라는 화두로 하버마스는 지치지 않고 모든 철학적 전통을 비판해 왔다. 그에게 철학은 더 이상 모든 학문에게 최종 근거를 부여하는 기초학문(Grundwissenschaft)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후 제일 철학을 자임해온 형이상학적 사고를 거부한다. 또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러 제일철학의 위치를 새롭게 차지한 인식론, 또는 그가 즐겨 쓰는 용어로 바꾸면 의식철학(Bewußtseinsphilosophie)을 거부한다. 도대체 무엇이 형이상학과 인식론에 학문 중의 학문, 또는 모든 학문의 근거를 제공하는 ‘자리 지킴이’(Platzhalter)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는가? 그래서 하버마스는 탈 형이상학 사고(Nachmetaphysisches Denken)와 의식철학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철학이 그토록 사랑하는 참된 지식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진리와 이성, 그리고 좋은 삶을 위한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도전적으로 선언한 것처럼 철학의 죽음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에서 발견의 횃불을 들고 있는 과학에 그 역할을 넘기면 되는가? 아니면 과학은 또 하나의 형이상학이기 때문에 진리 추구라는 버거운 짐을 훌훌 벗고 주어진 맥락 속에서 각기 서로 다른 답을 찾아가면 되는 것인가?
 
하버마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모든 인식은 언어에 삼투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철학에서 언어철학으로 이행한 언어학적 전회 이후 그의 철학을 집대성한 [의사소통이론] 앞머리에서 하버마스는 “오늘의 철학은 더 이상 세계와 자연, 역사와 사회 전체를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지식의 지위를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 이후, 또는 의식 철학 이후, 도대체 철학은 왜 필요하며,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가 찾은 단서는 언어화용론을 통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다. 하버마스는 2권으로 나누어진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심을 달리하는 많은 사상가들을 초대해서 끈질기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이 새로운 길을 통해서 사회이론과 도덕, 법,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지난 20세기 후반기에 나온 저서 중에서 이미 고전적 지위에 오른 이 책 읽기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숙제 하듯 의무감에서 읽을 필요는 없다. 모든 비판적 학문은 철학과 같은 일을 한다. 이것은 필자의 말이 아니라 하버마스가 한 말이다. 모든 철학, 모든 철학자에게 다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이해하기 힘든 철학 용어와 철학 사상을 암기하듯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 하는 길이 아니다. 그 점에서 하버마스 철학은 읽고, 쓰고, 토론하는 법을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