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철수는 지금 소형 우주선 안에 있다. 저기 멀리서 영희가 운전하고 있는 또 다른 우주선이 일정한 속도로 다가온다. 철수는 자신은 정지해 있으며, 영희가 자신 쪽으로 일정한 속도로 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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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출생 - 사망 1879.3.14. ~ 1955.4.18.
철수는 지금 소형 우주선 안에 있다. 저기 멀리서 영희가 운전하고 있는 또 다른 우주선이 일정한 속도로 다가온다. 철수는 자신은 정지해 있으며, 영희가 자신 쪽으로 일정한 속도로 운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희는 다르다. 철수와 반대로, 영희는 정지해 있는 것은 자신이며, 철수가 자신 쪽으로 일정한 속도로 운동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누가 보는가에 따라서 철수와 영희가 하는 운동은 달라진다.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서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속성으로 대표적인 것이 속도다. 영희가 관찰하느냐, 철수가 관찰하느냐에 따라서 영희의 속도와 철수의 속도는 달라진다. 이런 것을 상대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속도가 관찰자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낸 사람은 갈릴레오다. 그리고 뉴턴역학은 이 갈릴레오의 상대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영희와 철수가 뛰어난 물리학자라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이러저러한 계산을 통해서 자신과 상대방의 속도를 서로 다르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계산을 위해서 사용하는 물리 법칙은 동일할 것이다. 물리 법칙은 누가 관찰하는가와 무관하게 항상 성립한다. 철수와 영희의 속도는 상대적이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물리법칙은 상대적이지 않다. 다른 말로, 물체의 속성은 상대적이지만 물체를 지배하는 법칙은 절대적이다.
고전역학의 위기
아인슈타인의 등장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소위 고전 역학이라고 부르는 뉴턴 역학의 상대성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 이런 고전 역학은 위기에 봉착한다. 전자기학이 발전하면서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발견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속도라는 물체의 속성은 상대적이다. 하지만 전자기학에서 다루는 대상들의 속도들 중에는 상대적이지 않은 것들이 발견된 것이다. 빛이 그러했다.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과 몰리(Edward Williams Morley)는 빛의 속도가 상대적이라는 가정 하에서 에테르의 움직임과 관련된 지구 공전 속도를 측정하려고 했다. 즉 지구의 운동에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빛 속도의 차이를 측정하여 지구의 공전 속도를 계산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빛 속도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지구가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지구에서 관찰되는 빛의 속도가 일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속도는 상대적이라는 뉴턴 역학과 충돌하는 내용이다. 이제 고전 역학과 고전 전자기학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 모순을 어쩔 것인가?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그 어떤 과학자보다 아인슈타인은 대중적이다. 엉클어진 머리에 장난스러운 얼굴을 한 그의 사진은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 한 교수로부터 ‘게으른 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게으름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던 전자기학에 대한 강의를 아인슈타인이 다녔던 물리학과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학과 공부는 그의 관심 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특허국 3급 기술 시험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신분으로 위대한 논문들을 쏟아낸다. 물리학에서는 1905년을 ‘경이의 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그 해에 발표한 논문은 무려 25편이다. 그 중 세 편은 물리학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그 중 첫 번째 논문은 광전효과에 대한 것이며, 두 번째 논문은 브라운 운동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논문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력학에 관해서’가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에 대한 것이다. (16년이 지난 1921년, 아인슈타인은 ‘이론 물리학에 대한 기여, 특히 광전 효과에 대한 법칙을 발견한 이유’로 노벨상을 수상한다. 이렇게 다소 불분명하게 표현된 아인슈타인의 수상 이유는 당시 노벨상 위원회의 보수적인 면을 보여준다.) 세 번째 논문에 대해서 C. P. 스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도 않은 채로 완전히 자신의 생각에서 그런 결론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의 성과는 분명히 그렇게 얻어진 것이다.”(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재인용.)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물리학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리다
앞에서 19세기 말 고전 역학은 고전 전자기학과 충돌한다고 했었다. 이런 충돌은 고전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물리학으로 대체되면서 해결된다. 갈릴레오의 상대성과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 역시 물리 법칙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속도 역시 관찰자에 따라서 상대적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다른 속도는 관찰자에 따라서 상대적이지만, 빛 속도만은 예외이다.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도 우리가 어떻게 운동을 하던 어디에서 관찰을 하던 빛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고 주장한다. 특별한 물질, 즉 빛의 속도가 절대적인 물리법칙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이런 주장으로부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몇 가지가 따라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통일, 길이 수축, 시간 지연, 동시성의 상대성이다. 각각이 무엇인지를 길게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을 벗어난다. 그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리하자. 시간과 공간의 통일이라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묶여, 시공간(space-time)으로 간주된다. (이것을 처음으로 정식화한 사람은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다. 그는 바로 아인슈타인을 게으른 개라고 불렀던 교수다.)
한편 길이 수축이라는 것은 철수가 움직이는 영희를 볼 때, 그녀 공간이 수축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간 지연이라는 것은 철수가 움직이는 영희를 볼 때, 그녀의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희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희가 보기에 철수의 공간은 수축된 것으로, 그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동시성의 상대성이라는 것은 철수가 보기에 동시에 일어난 일이 영희가 보기에는 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난 일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글 목적에 맞춰 중요한 것은,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인 것이 된다.
뉴턴(Isaac Newton)에게 있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절대적이다. 흔히들 뉴턴 역학의 공간을 무한한 크기를 가진 컨테이너 박스에 비유한다. 그것은 물체가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체가 어떻게 운동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한편 뉴턴 역학을 그 기반으로 하는 칸트 철학에서도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고, 우리의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정해진 틀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린다. 내가 어떻게 운동하느냐에 따라서 공간은 수축되고 시간은 늘어난다. 이렇게 상대적인 시공간은 우리의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 고정된 틀의 역할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기존 칸트 철학도 위기에 봉착한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트램펄린 위에 무거운 별들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아인슈타인의 변혁은 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등속도 운동을 하는 물체만을 다룬 것이다. 하지만 1916년에 발표된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가속도 운동까지 확장한 것이다.이론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서 검증하려고 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부터 빛이 태양 주위에서 휠 것이라는 예측이 도출되었다. 1919년 드디어 일식 기간에 빛이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확증된다. 이 사건으로 아인슈타인은 과학계는 물론이고 대중적으로 슈퍼스타가 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아주 간단히 살펴보자. 이 이론을 통해서 그는 뉴턴 역학의 보편 중력, 즉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을 제거한다. 중력은 물질들의 분포가 만들어낸 효과일 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넓은 트램펄린 위에 무거운 별들이 있는 것과 같다. 넓은 트램펄린 위에 무거운 볼링공이 놓여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트램펄린에 조그만 구슬들을 올려놓아 보자. 그럼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무거운 볼링공 때문에 트램펄린은 휘어져 있고, 그 휘어진 표면을 따라서 구슬들이 흘러 들어간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역시 비슷하다. 커다란 별 주변에는 시공간이 굴절된다. 그리고 그 굴절된 시공간을 따라서 물체가 움직인다.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의 표현에 따른다면, “물질은 공간이 어떻게 휘었는지 말해주고, 공간은 물질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말해준다.” 이제 중력은 우주에 존재하는 미스터리한 힘이 아니라, 휘어진 시공간으로부터 비롯된 효과일 뿐이다. 더불어 뉴턴 식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상대론적인 시공간 이론을 제시하는 데 있어, 아인슈타인이 구현하고자 했던 철학 원리는 에른스트 마흐의 것이었다. 마흐는 과학이란 단지 관찰할 수 있는 현상만을 다루어야 하며, 물리 세계에 대한 설명은 가능한 경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뉴턴의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주장을 ‘마흐의 원칙’이라고 불렀으며, 자신의 이론은 철저히 그 원칙을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물리학자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물리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아브라함(Max Abrah am)은 죽을 때까지 에테르의 존재를 믿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제대로 된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혁명의 시기에는 언제나 그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점은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신이 초기 양자역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뛰어난 통계 물리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양자 역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양자 역학은 확실히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내 내면의 목소리는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어쨌든 나는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그가 거부했던 것은 양자 역학의 확률적인 특징이다.
양자 역학은 그 근본적인 수준에서 확률적인 이론이다. 양자 역학은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측정할 때 전자가 어디에 있을 확률이 얼마인지 말해 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양자역학의 특징을 거북스럽게 생각했다. 양자 역학은 실재 세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가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였다. 다소 철학적으로 말해서, 그의 실재론적 세계관, 혹은 그의 결정론적 세계관 때문에 그는 양자 역학을 거부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년
정치적 활동
지금까지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성과에 따라 그것이 어떻게 기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몇 가지 철학적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철학은 다소 불분명하다. 앞에서 언급한, 아인슈타인과 마흐의 철학 사이의 관계도 학자들 사이의 의견이 분분하며, 또한 과연 아인슈타인이 결정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는 실재론자였는지 역시 단언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아인슈타인의 물리학과 철학 외적인 면을 하나 언급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1932년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옮긴다. 그 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뒤,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에게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부추기는 편지를 보냈다. 그의 편지를 받고 루즈벨트는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 시작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내 인생에 있어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후회한다. 말년에 아인슈타인은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한다. 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했으며, 당시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에도 저항했다. 자유와 평화를 원했던 위대한 정신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어느 곳이나 넘쳐나는 정치적 격정, 희생자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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