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20세기 투자(혹은 투기)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투자전략은, 수많은 경험적 사례에 의한 반증을 견딘 이론만이 받아들일 만하다고 말한 포퍼(K. R. Popper)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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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출생 - 사망 1902.7.28. ~ 1994.9.17.
0세기 투자(혹은 투기)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투자전략은, 수많은 경험적 사례에 의한 반증을 견딘 이론만이 받아들일 만하다고 말한 포퍼(K. R. Popper)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소로스는 런던 정경대학에서 포퍼의 강의를 들은 포퍼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최근 미국 경기 불황기에도 막대한 투자이익을 남긴 소로스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포퍼의 저서에서 이름을 따서 ‘열린사회 재단’이라는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또 독일 수상을 지낸 헬무트 슈미트와 헬무트 콜, 그리고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자로 포퍼를 꼽고 있으며,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피터 미더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도 포퍼를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탁월한 철학자로 평가했다. 이처럼 철학계는 물론 정계, 재계, 그리고 다른 학문 분야의 지성인들에게 포퍼만큼 널리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왜 포퍼 철학이 20세기 지성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 것일까?
마르크시즘과의 조우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강의를 듣다
포퍼는 1902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변호사였던, 포퍼의 아버지는 15,000권이 넘는 장서를 소유할 만큼 지적인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욕구는 포퍼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지적 욕구에도 불구하고, 포퍼는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제도교육에 환멸을 느껴 고등학교를 중퇴한다. 그러나 그의 지적인 욕구는 그로 하여금 빈 대학에 청강생으로 등록하게 하였고,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경험을 한다. 그 하나는 마르크시즘과의 조우이고 다른 하나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그의 상대성이론의 강의를 들은 것이다.
포퍼는 10대 후반부터 마르크시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등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여 합병할 때, 마르크주의자들이 그 사건을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귀결, 즉 공산혁명으로 가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마르크스주의를 일종의 전체주의로 규정하고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사상편력을 정당화라도 하듯이,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지만, 그 시절을 보내고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22년 빈 대학에 정규학생으로 등록을 하여, 26세가 되던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런데 이 무렵 서유럽 철학계의 중심에는 빈 서클(Vienna Circle)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에 영향을 받아, 20세기 새로운 철학인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를 태동시켰다. 논리실증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귀납주의와 검증가능성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귀납주의는, 소박하게 설명해서, 과학이 경험관찰로부터 시작되고, 과학법칙은 경험관찰 사실을 일반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예를 들어, 관찰된 몇 개의 에메랄드가 초록색이라는 사실로부터 그 사실을 일반화하여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는 보편적인 주장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일반화 과정은 대표적인 귀납추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을 귀납주의라고 한다.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 원리란, 어떤 진술이 의미 있는 진술이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참 또는 거짓이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는 진술은 ‘초록색인 에메랄드’의 관찰을 통해서 검증되는 셈이고, 따라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신은 자비롭다”와 같은 진술을 검증할 관찰 사실은 없고, 따라서 이 진술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요컨대 논리실증주의자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어떤 과학적 주장의 정당성은 그것을 지지하는 관찰과 경험의 정도에 달려 있고, 과학 이론은 다양한 종류의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며, 그런 경험적 사실의 정도가 많을수록 그 이론의 설득력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적인 거장들의 주장에 반기를 든
젊은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이러한 지적인 거장들의 주장에,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포퍼가 반기를 든 것이다. 그는 과학이론을 검증하는 아무리 많은 수의 관찰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증거가 이론의 진리성을 논리적으로 확립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많은 ‘초록색의 에메랄드’를 관찰한다고 해도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는 진술이 결정적으로 참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 한 차례의 반박사례(초록색이 아닌 에메랄드)만 발견되어도 그 진술은 거짓이 되고 만다. 그것이 바로 포퍼가 귀납주의를 포기하고 과학의 방법이 연역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다음 두 논증을 보자.
논증1)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색이라면 다음에 관찰될 에메랄드도 초록색일 것이다.
관찰된 에메랄드가 초록색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
논증2)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색이라면 다음에 관찰될 에메랄드도 초록색일 것이다.
초록색이 아닌 에메랄드가 관찰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색인 것은 아니다.
귀납주의는 논증1)에 의지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는 논리적으로 오류(후건 긍정의 오류)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은 논증2)이고, 포퍼는 이를 토대로 과학이론의 등장과 발전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과학의 발전은 기존 이론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경험적 사실이 관찰됨으로써, 그 이론이 반증되는 과정을 통해서 달성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과학자는 기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반증할 수 있는 관찰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라고 한다.
그러면 과학이론이 경험관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가? 포퍼에 따르면, 과학이론은 기존의 이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발생한 사실을 적절한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가설적인 추측이다. 즉 과학이론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발생한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제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가설이 관찰을 통해서 반증된다면 그 가설은 포기되고 다른 가설이 제안되는 과정이 지속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반증을 견디고 살아남은 가설은 과학이론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반증을 견디고 살아남은 과학이론은 반증되어 버려진 과거의 이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참에 가까울 뿐, 그것이 반드시 ‘참’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결국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와 착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추측과 반박(conjecture and refutation)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문제에 부딪혀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가설을 제기하고, 그것을 반증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한다는 그의 관점을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한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완벽하지 않고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데, 즉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를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라고 한다. 오류가능주의에 따르면, 이성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비판을 허용하고 반증을 통해 점진적 방법으로 나아가야만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포퍼는 자신을 계몽철학의 전통에 속하는 마지막 철학자라고 말한 바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방법론적으로만 이성을 중시할 뿐이고, ‘이성’ 자체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논리실증주의에 반대하여 반증주의를 제안한 그의 첫 저서, [탐구의 논리]가 1934년 출간되었다. 그 저서는 1930년부터 씌어져서 1932년 완성되었으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2년여를 방황하다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제거한다는 조건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으로 포퍼는 빈 서클의 회원들에게도 알려졌지만, 여전히 그는 그들의 모임에 초대되지 못했고, 심지어 노이라트(O. Neurath) 같은 빈 서클의 회원은 포퍼를 자신들의 ‘공식적인 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포퍼는 철학계에서 인정을 받기도 전에, 1930년대 나치의 등장으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1936년 뉴질랜드로 망명을 떠난다. 그곳에서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의해서 합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작한다. 그 결과 1944년 [역사주의의 빈곤], 1945년 유명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출간된다.
과학철학에 대한 견해의 확장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에 대한 포퍼의 견해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에 대한 포퍼의 견해도 과학철학에 대한 그의 견해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증주의를 주장한 포퍼는 어떤 이론이든지 그것이 과학이라는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증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토대로 진짜(genuine) 과학과 사이비과학(pseudo-scie nce)을 구별한다. ‘모든 물체는 열을 받으면 팽창한다.’는 진술은 반증가능하다. 왜냐하면 열을 가해도 팽창하지 않은 물체가 존재한다면 이 진술은 거짓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험적인 투기는 행운을 낳는다.’는 진술은 반증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진술을 반증하는 사례는 모험적인 투기를 했음에도 행운을 낳지 않는 경우일 텐데, 모험적인 투기란 어느 정도로 위험부담을 가져야 모험적인 투기인지, 행운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낳는 경우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이 진술을 결정적으로 반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이론이 진정한 과학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을 구성하는 진술들이 반증가능해야 하고, 반증가능하지 않은 진술로 구성된 이론은 참다운 과학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포퍼가 반증가능하지 않아서 진짜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론 중 대표적인 것이 아들러의 심리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열등감이 인간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린 아이를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은 그를 구하기 위해서 뛰어들 것이고, 어떤 사람은 못 본 척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 아들러의 심리학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것은 열등감이 그 동기라고 설명한다. 결국 그의 이론은 모든 행동을 다 설명하고, 따라서 어떤 행동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이론은 반증되지 않는다. 포퍼의 아들러에 대한 설명이 옳다면 아들러의 이론은 반증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참다운 과학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
포퍼는 역사주의에 대해서 그 핵심적 원리를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그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역사주의에는 역사의 발전법칙을 신의 의지로 설명하는 유신론적 역사주의, 역사 발전법칙을 자연의 법칙으로 취급하는 자연주의적 역사주의, 그리고 역사 발전의 법칙을 정신적 발전의 법칙으로 취급하는 정신적 역사주의, 역사를 경제적 발전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경제적 역사주의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역사주의가 있지만, 모든 역사주의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역사가 불가피하게 어떤 원리나 규칙에 따라 결정된 목적(determinate end)을 향해서 발전해나가고 따라서 역사의 미래를 법칙에 따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이론이다.
포퍼는 두 가지 이유로 역사주의를 비판한다. 첫 번째 이유는 역사주의가 반증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의 중요한 작업은 발생한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발전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마르크스주의도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 예측을 한다. 문제는 그 예측이 지지될 수 없는 경우에도 마르크스주의는 미봉적인(ad hoc) 가정을 덧붙이거나 수정함으로써 그 예측을 여전히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포퍼는 마르크스주의가 초기에는 진짜 과학적이었지만, 결국 사이비 과학, 도그마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포퍼가 역사주의를 비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인간 이성에 대한 오류가능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주의의 미래 예측은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등장하는 필연적인 것이므로 거짓일 수 없는 진리일 것이고, 이것은 오류가능주의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의 산물인 지식은 그 자체로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반성과 비판의 대상이어야 한다. 과학철학의 방법론인 ‘비판적 합리주의’가 사회철학의 원리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지식과 이론에 대한 비판이 가능한 사회가 바로 열린사회이다.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에 의해 세계대전이라는 불행에 빠졌을 때, 포퍼는 전체주의가 역사주의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유토피아적 사회철학은 헤겔과 마르크스로 이어지면서 서양 지성사의 한 축을 형성해 왔는데, 바로 이러한 유토피아적 사회철학은 “인간의 역사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법칙대로 진행된다.”는 역사주의에 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역사주의를 “인류의 낡아빠진 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역사는 내적인 원리나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열린사회인데, 역사주의는 그러한 열린사회로의 발전을 방해하고, 독단적이고 전제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비판되어야 한다는 것이 포퍼의 주장이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
끝없는 탐구를 계속해야하는 이유
포퍼는 열린사회의 특징으로, 한 사회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고, 그 토론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사회제도는 사회구성원의 자유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점, 두 가지를 든다. 우리가 이런 열린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만 사회가 진보할 수 있으며 누구도 궁극적인 진리를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규범이나 가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필요에 의해서 언제든 개선시켜 가야 하는 인간의 과제이고, 따라서 사회의 진보는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서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정해진 원리나 법칙에 따라 결정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린사회를 거부하는 사회는 모두 암암리에 전제적인 이데올로기를 궁극적인 진리라고 주장하고 강요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반증된 과학이론이 포기되고 새로운 가설이 다시 시험무대에 등장하는 것처럼, 많은 시민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회이론이나 정책은 포기되고 새로운 대안이 시험되는 사회가 바로 열린사회이다. 열린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의 비판적 탐구에 의해서 사회정책이 포기되고 수정될 수 있다. 과학이론에 대한 그의 설명처럼, 그리고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는 그의 마지막 에세이집의 제목처럼, 우리의 삶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비판적 이성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끝없는 탐구]를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포퍼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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