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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물구나무서기 한 철학 [생활속의철학]

by 별꽃74 2025. 9. 14.

물구나무서기 한 철학

철학은 체계적 틀을 요청하는가, 아니면 체계적 틀을 부수는 데 철학이 요청되는가? 철학의 역사를 보면 두 가지 유형의 철학자가 있다. 체계를 만드는 데 능한 이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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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출생 - 사망    1818.5.5. ~ 1883.3.14.

철학은 체계적 틀을 요청하는가, 아니면 체계적 틀을 부수는 데 철학이 요청되는가? 철학의 역사를 보면 두 가지 유형의 철학자가 있다. 체계를 만드는 데 능한 이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부수는 데 능한 이가 있다. 철학의 역사는 시대가 요청하는 사상의 틀을 세우는 일과 상식의 빈 틈을 찔러 거대한 오류 덩어리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일이 번갈아 나타나는 과정이다.

마르크스 철학
세 가지 원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틀을 부수는 데도 능했고, 이론 체계를 쌓는 데도 능했다. 마르크스가 세운 철학 체계를 흔히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세계 지도를 양분한 거대 이념이다. 그것은 좁은 의미의 철학의 틀을 뛰어넘어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사상을 총망라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한 건축 설계도가 아니라, 실제 건축물을 가리키는 브랜드명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의 절반은 그 건축물로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한반도 땅의 절반은 그때 세워진 건축물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는 마르크스주의는 세 가지 원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독일 철학과 영국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사상이다. 마르크스 사망 3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나온 레닌의 이 해석은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마르크스 철학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편리한 측면이 있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난 마르크스는 당시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으로 건너가 헤겔에게 변증법을 배웠고, 프랑스 파리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으며, 그 무렵에 만난 평생 친구이며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의 권유로 영국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그의 필생의 대작 [자본론]을 완성했다. 그래서 마르크스 철학은 19세기 유럽의 질서를 흔든 두 개의 역사적 사건, 곧 프랑스 혁명과 영국 산업혁명에 대한 독일 철학의 응답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르크스는 대부분의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가처럼 사회의 모든 악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에서 비롯된다고 바라본다. [철학의 숲] 루소 편에서 우리는 인간사회에서 불평등의 기원은 자연상태를 벗어난 인간이 사유재산을 가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는 루소의 주장을 살펴보았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유명한 말은 공동체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나누어서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와 루소는 이해를 같이한다. 마르크스는 루소를 직접 겨냥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문명 이전의 상태로 상정되는 자연상태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상적이라고 여겼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타난 프랑스 사회주의자, 특히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와 생시몽(Henri de Saint-Simon, 1760-1825) 등이 지향한 사회주의와 자신이 지향한 사회주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지향하는 낭만적 이상으로서의 사회주의에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우토포스’(ou topos)에서 나온 말 뜻 그대로 이 세계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같이 쓴 [공산당 선언]에서 푸리에와 생시몽, 그리고 영국의 사회주의자 오언(Robert Owen, 1771-1858)을 함께 묶어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로 분류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명명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공산주의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구분 짓는가? 지배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계급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아니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도 그 차이를 인식했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그리고 고통 당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회과학과 사회법칙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전체 사회를 향해, 특히 지배 계급을 향해 사회개혁을 호소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은 그들이 아직 유토피아적 명제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계급 대립을 초월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을 통한 공산주의 실현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 속에서 계급 투쟁의 필요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 그래서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웅변조로 외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죽은 뒤 공산주의에 또 다른 이름을 하나 붙여주었다. 그것은 ‘과학적 사회주의’다.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달리 ‘과학’이 될 수 있는 근거로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Historischer Materialismus)을 거론했다. 곁가지 이야기가 되겠지만, 마르크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다. 과학적 사회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은 엥겔스가 붙인 이름이다.

누가 물구나무서기를 했는가,
헤겔인가 마르크스인가?

 
역사적 유물론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헤겔 철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역사적 유물론, 또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은 마르크스가 표현한대로 헤겔의 역사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을 물구나무서기 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크스는 그의 철학이 물구나무서기를 한 것이 아니라, 원래 헤겔 철학이 물구나무 서 있었다고 말한다.

헤겔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정신이 스스로를 자기 전개하는 것을 체계화한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철학의 숲] 헤겔 편에서 정신이 스스로 자신을 파악하면서 전개하는 방식을 가리켜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펼쳐진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을 가리키는 철학의 영역을 헤겔의 ‘정신철학’이라고 했다. 이러한 헤겔 철학에서 물질은 정신과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존재’라고 했으며, 그것을 다루는 분야가 바로 헤겔의 ‘자연철학’이라고 했다.

이것을 평이한 말로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 세계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헤겔에 있어서 물질은 정신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헤겔 철학을 관념론, 그것도 절대 관념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여기에서 ‘절대’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관념은 스스로, 그리고 관념을 향해서 존재하며, 관념 스스로의 운동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절대화된 개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절대화된 정신이 움직이는 논리, 또는 원리, 또는 법칙이 철학의 역사에서 끝없이 논란이 되어왔던 변증법이다. 그것은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이며, 역사의 전개 방식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수용하지만, 변증법으로 움직이는 운동의 주체는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헤겔 철학은 앞뒤가 바뀌어 있다. 그래서 그는 관념적 헤겔 철학을 물질을 중심으로 한 철학으로 180도 바꾸어버린다.

세계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변혁의 대상이다

 
이쯤에서 우리가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철학자가 있다. 헤겔 좌파의 맏형 격에 해당하는 포이어바흐다. 그는 마르크스에 앞서 유물론의 입장에서 헤겔을 비판한 인물이다. 포이어바흐는 신이라는 관념을 인간의 본성이 만들었다고 보았다. 한 마디로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이때 인간이 만든 신이라는 관념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속성, 포이어바흐의 좀 딱딱한 표현을 빌면 ‘유적 존재’(Gattungswesen)가 외화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한편으로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지나치게 관조적이며 실천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 철학에 대한 비판을 담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11가지 테제]의 마지막11번 테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유명한 말은 지금은 훔볼트 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베를린 대학의 현관 벽에 붙어있다. 바로 마르크스가 헤겔의 철학 강의를 들은 대학이다. 포이어바흐에 대한 그 밖의 몇 가지 테제들은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유물론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의 사유가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의 문제다”.

진리를 실천적 맥락에서
바라본 최초의 철학자

 
여기서 마르크스는 진리를 철저하게 실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산당선언]에서 계급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실천적 가치를 상실할 뿐 아니라 이론적 정당성마저 상실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 이 때 마르크스는 이론적 철학자라기 보다는 부인할 수 없는 실천적 혁명가다. 마르크스의 진리는 근대철학에서 추구해왔던 객관적 진리라는 개념과 지금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진리는 실천적 맥락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이러한 진리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올바름으로서의 정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또 마르크스가 말하는 물질이 인간과 관계 없는 독립적인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물질은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또는 고정되어 있는 기계론적 물질이 아니라 인간을 매개로 한 물질을 말한다. 따라서 물질에는 인간 활동의 역사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역사를 유물론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뜻은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물질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엥겔스는 그것을 한 마디로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부른다. 다른 한편 역사를 유물론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이 물질과 관계를 맺는 인간 활동, 또는 실천적 측면을 살펴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항상 실천적 유물론이다.

인간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구체적인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적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가 놓여진 사회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헤겔의 생각이 거꾸로 선 것이다.

헤겔은 역사를 전개하는 원동력을 정신으로 보았지만, 마르크스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생산력을 꼽았다. 모든 시대는 생산력의 성격에 부합하는 생산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생산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이것은 생산 관계가 기계적으로, 또는 자동적으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조응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에는 항상 불일치가 일어날 수 있다. 생산 관계가 생산력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위기가 발생한다.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어서 표현하면 생산 관계가 생산력 사이에 모순이 격화되어 생산 관계가 생산력 발전의 질곡이 되면 사회혁명이 시작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생산 관계에는 다섯 가지 기본 양식이 존재한다. 원시 공동체, 노예제도, 봉건제도,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마르크스의 근대 프로젝트
무엇을 남겼는가?

 
우리는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가 지지하는 사회주의가 역사적 법칙이라는 그의 확신을 읽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9세기 초반에 등장한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가에게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이름 붙인 자신감은 여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한편, 우리는 마르크스가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 대한 설명에서 헤겔이 말하는 양과 질의 변증법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 점을 확인한다. 이러한 역사 해석은 양적 변화가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양질전환의 법칙으로 도식화된다. 따지고 보면 생산력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생산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각각 반영한다는 마르크스의 서술 방식도 헤겔식이다.

이러한 헤겔 철학의 유산은 마르크스가 남긴 대작 [자본론]의 서술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자본론]의 내용은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 분석이지만, 그것을 담은 형식은 헤겔 철학에 기초해 있다. 레닌은 [자본론]이 헤겔 철학의 이해 없이 [자본론]을 읽었을 때,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때문일까? 마르크스 철학에 관한 책은 대부분이 철학적 외피는 빠뜨린 정치경제학적 요약이거나, 아니면 도식화된 교리문답식 해석이 유난히 많다. 다른 철학에도 적용되는 점이지만, 마르크스 철학은 어렵다고 쉽게 씌어졌다는 해설서를 읽기보다는 원전 읽기에 직접 도전하는 편이 좋다. 특히 마르크스 철학처럼 도식화되기 좋은 책은 더 그렇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마르크스 이야기는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19세기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한 지성의 이야기다. 또 뻔한 말이지만, 마르크스의 철학은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장점도 있고 허점도 있는 철학이다. 물론 냉전 시대의 커튼이 계속 내려져 있는 한반도에서 마르크스를 소설책 읽듯이 담담하게 읽어가기는 아직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를 읽는 것은 그가 세운 체계를 옹호하거나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세운, 그리고 그가 거부한 근대 프로젝트를 읽지 않으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