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자
시계 수리공 소년은 열 여섯 살에 고향 제네바를 떠났다. 그를 키운 것은 한 시인의 시구를 빌리면 8할이 바람이었다. 그는 많은 직업을 거쳤다. 한때는 파리에서 오페라를 작곡한 음악가로, 한
terms.naver.com
장 자크 루소
출생 - 사망 1712.6.28. ~ 1778.7.2.
시계 수리공 소년은 열 여섯 살에 고향 제네바를 떠났다. 그를 키운 것은 한 시인의 시구를 빌리면 8할이 바람이었다. 그는 많은 직업을 거쳤다. 한때는 파리에서 오페라를 작곡한 음악가로, 한때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를 가르친 것은 자연이었다. 스승 없이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쓴 책이 블랙 리스트에 올라 불태워지고 그에게 수배령이 떨어지면서, 그는 또 다시 유랑의 짐을 쌌다. 평생을 바람처럼 떠돌아 다녔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을 고독한 사람이라 불렀다. 죽기 직전에도 쓰고 있었다는 책 제목을 그는 이렇게 달았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 고독한 산책자는 장 자크 루소(Jean-Jacque Rousseau, 1712-1778)다.
구질서를 혐오했던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는 프랑스 계몽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18세기 계몽사상의 최고 이론가 중의 한 명이다. 동시에 계몽사상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역설은 어디에서 오는가? 계몽은 어둠을 밝힌다는 뜻이다. 그것은 계몽 또는 계몽주의를 가리키는 영어(enlightenment), 불어(Lumières), 그리고 독일어(Aufklärung)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우리 말 계몽(啓蒙)도 마찬가지다.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이 바로 이성이다. 이성의 빛이 비치면 어두운 미몽은 사라진다. 이성의 빛에서는 구 질서의 권위는 힘을 잃는다. 온갖 형태의 권위에 기생했던 허위와 기망이 사라지고, 권위 앞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던 무지와 어리석음은 깨우쳐진다고 계몽사상가들은 믿었다. 이성의 빛을 발해서 미몽을 깨뜨리는 구체적 행위가 교육이며, 그 결과로 나타난 구체적 소산물이 학문과 예술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을 18세기적 의미에서 교양과 문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다른 계몽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루소는 구 질서를 극도로 혐오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설계도를 짜는 데도 그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대단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루소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이성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성은 지나치게 고정적이고, 주어진 현상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또한 루소에게 교육은 이성의 힘으로 지적 훈련을 닦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강제 없이 자기 소질에 따라서 자기 감정에 충실하게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연의 원칙에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적 반(反)자연을 거부해야 한다. 학문과 예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해방하는 교양이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는 사슬로 그는 바라보았다.
루소의 대표적 논문 학문과 예술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루소의 첫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과 예술론]에서 이미 그러한 주장이 나타난다. 이 논문은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논문에 출품해 당선된 작품으로 방랑자 루소의 이름을 유럽 지성계에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디종 아카데미에서 내건 논문 주제는 이랬다. ‘학문 및 예술의 진보는 풍속을 부패시켰는가, 아니면 도덕적 순화에 기여했는가?’ 루소는 훗날 지인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현상 논문 기사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만약 순간적 영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때 느낀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적었다.
루소는 [학문과 예술론]에서 모든 학문과 예술은 도덕적 타락에 연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은 미신에 기원하며, 물리학은 게으른 호기심에서 태어났다. 수사학은 야심에서 비롯되었으며, 도덕철학은 제가 잘 났다는 생각을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문명은 이러한 악덕에서 배태한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가 도덕적으로 건강했고, 학문과 예술을 권장했던 아테네가 폭정과 사치로 무너진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융성했던 로마 제국이 부패의 늪에 빠져 몰락한 것도 아테네가 밟았던 길을 그대로 따라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인간은 문명 이전의 상태, 곧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가 쓴 논문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루소는 학문과 예술에서 다룬 주제를 사회와 경제 분야로 확장했다. 그의 두 번째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그것이다. 이 논문 역시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논문 모집에 응모한 것이었다. 주제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연법에 인정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낙방이었다.
인간이 사회를 만들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는 인간에게 불평등이 없었다고 루소는 상정한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의 미개인은 선한 인간이 무엇인지, 또 악한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루소는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는 홉스(Thomas Hobbes)의 견해에 반대한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곧 자기애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점을 홉스가 놓치고 있다고도 했다. 하나는 자연상태의 자기애로 루소는 그것을 ‘Amour de soi’라고 말한다(이에 상응하는 마땅한 우리 말을 찾기 힘들어 원어 그대로 표현한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가지고 있는 자기애로 사회와 무관하게, 또는 사회에 선행하는 자기애를 가리킨다. 또 다른 자기애는 ‘Amour propre’로, 이것은 사회 형성과 함께 생겨난 자기애를 말한다. 루소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사유재산제도와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자연상태 속의 자기애, 곧 “Amour de soi”보다는 사회관계 속에서 형성된 자기애, 곧 “Amour propre”를 자극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기초한 참된 자기애는 상실되고, 그 자리를 타자의 의견에 의존하는 왜곡된 자기애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불평등의 기원을 인간이 자연상태에서의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찾았다. 인간 모두에게 속했던 자연상태의 토지를 인간이 분할 소유하면서 인간은 자유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토지를 나누어 소유하는 사적 재산제도가 생겨나면서 부자와 빈자가 생겨나고, 주인과 노예가 만들어졌다. 부자들은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와 법령을 만들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는 불평등을 영구화했다. 인간은 자유로운 자연상태에서 예속과 복종의 상태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 것이다’ 선언하는 일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그대로 믿을 만큼 단순한 사람들을 찾아낸 사람은 정치사회(국가)의 창립자였다. 말뚝을 뽑아내고, 개천을 메우며 ‘이런 사기꾼이 하는 말 따위는 듣지 않도록 조심해라. 열매는 모든 사람의 것이며 토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는다면 너희들은 파멸이다’고 동포들에게 외친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 그리고 얼마나 많은 비참함과 공포를 인류에게서 없애 주었겠는가?”
과연 루소답다. 주장하는 내용도 글의 스타일도 열정적이다. 디종 아카데미에서 루소를 낙방시킨 것은 이 논문이 지나치게 과격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루소와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는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촌평을 들어봐야 제 맛이 난다. 루소가 문명보다 자연을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했다면, 볼테르는 냉철한 머리로 인류 문명의 발전을 추구한 사상가다. 루소가 격동적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았다면, 볼테르는 글을 비트는 풍자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나는 인류에게 트집을 건 당신의 새로운 저작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진상을 말해주는 당신을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중략) 이제껏 누구도 인간을 짐승으로 묘사하는 기재를 보인 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저작을 읽으면, 인간은 네 발로 걷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습관을 없앤 지 60년 이상이나 되기 때문에 유감스럽지만 다시 그 습관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볼테르가 루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다룬 주제를 다시 손질해 [사회계약론]을 내놓았다.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 그를 옭아매는 사슬에 묶여있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교육문제를 소설 형식으로 기술한 [에밀]과 함께 루소의 주저로 꼽힌다. [인간불평등 기원론]이 자연상태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면서 불평등한 사슬에 구속되었는가를 살펴보는데 방점을 찍었다면, [사회계약론]은 사슬에 묶인 인간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인간 자신에게만 복종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이 정치 권력, 더 나아가서 국가의 설립 근거를 따지는 정치철학의 고전으로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정치권력의 기본원리
잠깐! 루소 정치철학의 기본 뼈대는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인 자연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닌가?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정신이 어떻게 정치권력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 정치철학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루소는 정치공동체로서의 국가를 바로 인간이 불평등해지는 거악의 원천으로 지목하지 않았는가? 맞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회계약론]이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연장선 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사회계약론]은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주장을 뒤집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 문제를 푸는 열쇠를 찾기 위해서는 철학의 역사에서 끝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 중요한 개념 하나를 살펴봐야 한다. 바로 ‘일반의지1)’(volonté générale, general will)라는 개념이다.
루소는 일반의지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서 특수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특수의지는 시민이 가지고 있는 일반의지와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반의지를 전체의지와 구분했다. 루소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의지는 공통의 이익만 생각하는 반면, 전체의지는 사사로운 이익만 생각하는 특수의지의 총합일 뿐”이며, “특수의지에서 서로 상쇄하는 과부족을 빼면 차이의 합계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고도 했다. 그의 주장을 종합해 볼 때, 일반의지란 공동체가 공공선2)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합의에 의해서 정치권력과 그 행사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의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상태를 벗어나 사회를 만든 인간은 다시 자연상태로 복귀해야 하는가? 볼테르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문명을 뒤로 하고 네 발로 다시 걸어야 하는가? 아니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은 그가 가상적 역사를 통해서 상정한 자연상태로 회귀하라는 액면 그대로의 뜻이 아니다. 자연상태 속에서 인간이 자유로웠고, 그리고 불평등이 없었던 바로 그 이상향으로 복귀하라는 뜻으로 탄력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루소는 그렇다고 본다. 그는 그것이 일반의지의 행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일반의지의 행사를 그는 ‘주권’이라고 말한다. 주권은 일반의지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양도할 수도 없고, 분할할 수도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루소가 꿈꾼 그런 이상 국가가 과연 가능할까? 루소는 그런 이상향으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그의 모국인 제네바 공화국을 이야기한다. 그곳들은 시민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직접 민주주의가 나타났던 곳이다. 우리가 자주 놓치는 점이지만, 루소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현하고 있는 의회 민주주의, 곧 국민의 의사를 의회가 대리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간접 민주주의를 가리키지 않는다. 의회 민주주의는 루소의 용어를 빌어서 말하면 ‘귀족 정치(aristocracy)’이다. 더 콕 짚어서 말하면 ‘선출된 귀족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정부 형태를 민주정치와 귀족정치, 그리고 군주정치의 셋으로 구분한다. 그의 정부 분류 방식에 따르면 로크의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영국식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민주정치가 아니라 귀족정치다. 루소가 영국식 민주주의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은 이유다. 물론 로크 식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루소의 정치철학을 전체주의(칼 포퍼), 또는 유사 민주주의(버트란드 러셀) 쯤으로 바라본다.
계몽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던 역설의 철학자
루소는 로크처럼 자신의 정치 이상을 현실 프로그램으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나 근대 철학자 마르크스처럼 자신이 세운 사회공동체 이론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단지 고독한 상태에서 꿈을 꾼 ‘몽상가’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은 그의 사후 1789년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현실로 나타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상태에서처럼 모두 평등하며, 자유로우며,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더 큰 전체에 합일하게 된다는 루소의 정치철학은 자유, 평등, 박애로 요약되는 프랑스 혁명의 기초 이념이 되었다. 루소는 혁명의 예언자로 숭상되었고, 그의 유해는 혁명 지도부에 의해 프랑스 영웅을 기리는 프랑스식 국립묘지 팡테옹에 볼테르 옆에 나란히 안장되었다.
우리는 서두에서 루소를 계몽사상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 명이면서, 동시에 계몽사상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라고 했다. 그렇다. 루소는 인간과 근대사회의 구성원리를 기획한 가장 위대한 계몽사상가의 정점에 서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사회의 구성원리를 백과사전식 지식에서 구하지 않았고, 이성의 빛이 밝게 비치는 문명에서 구하지도 않았으며, 자연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계몽 프로그램에 역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를 계몽의 시대 한 복판에서 계몽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한 역설의 철학자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철학⦁불교⦁종교⦁인문학⦁자기계발...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애덤 스미스, 경제원리, 인간본성에서 찾다 [생활속의철학] (0) | 2025.09.15 |
|---|---|
| 칼 마르크스, 물구나무서기 한 철학 [생활속의철학] (0) | 2025.09.14 |
| 존재와 무, 왜 무(無)가 아니고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생활속의철학] (0) | 2025.09.14 |
| 임마누엘 칸트, 계몽의 꽃을 피우다 [생활속의철학] (0) | 2025.09.14 |
| 칸트의 실천철학,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내 안의 도덕률 [생활속의철학] (0) | 2025.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