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의 경험주의적 회의
영국의 경험주의자들 중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깊은 영향을 남긴 데이비드 흄(David Hume, 원래는 Home)은 171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다. 에든버러는 1708년 잉글랜드에 병합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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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험주의자들 중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깊은 영향을 남긴 데이비드 흄(David Hume, 원래는 Home)은 171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다. 에든버러는 1708년 잉글랜드에 병합되기 전까지 왕국 스코틀랜드의 수도였으며, 흄과 교우관계를 맺었던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활동하던 곳으로서, 흔히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본거지로 알려진 아름다운 도시다.
흄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 역사 그리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책을 탐독하면서 12세가 되기 전(10세라는 설도 있다!), 형을 따라 에든버러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인문학적 소질이 뛰어났었다. 집에서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흄은 철학자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그의 주저 중의 하나인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 3권은 1734~1737년 프랑스에 체류 중 준비하여, 영국에 돌아와 1739~1740년에 출판하였다. 흄은 자신의 주저를 불과 23살에 시작하여 29살에 끝낸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책을 출판하였다는 것보다 철학의 거인 칸트를 ‘도그마의 잠’에서 깨우고, 이후 과학철학의 시초, 논리실증주의의 원형으로 알려진, 지식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하였다는 점이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흄, 기존 철학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주목 정합성의 부족, 확실성의 결여
흄은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고의 새로운 장’이 그에게 열렸다고 믿으면서, 기존의 철학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판단력이 있는 배운 사람이라면 최고의 신뢰를 받으면서, 정확하고 심오한 추론이라고 자부하는 체계가 얼마나 허약한 기초에 놓여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단지 믿음에 기초한 원칙들, 이로부터 서투르게 끌어낸 결론들, 정합성이 부족한 부분들, 확실성이 결여된 전제 등은 가장 저명한 철학자의 체계 여기저기에서 접할 수 있으며, 철학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있다.
[인간본성론] 서문
철학자의 윤리가 근거 없는 주장의 비판과 정당화의 시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바른 지식이란 과연 무엇인가?’는 실로 오래된 철학의 주제에 속한다. 그렇다면 흄이 비판의 칼을 갈아서 새로운 철학의 장을 열겠다고 했을 때, 그는 어떤 원칙에서 출발하였을까?
인간에 대한 과학이 다른 과학의 유일하고 견고한 토대가 되듯이, 인간에 대한 과학에 우리가 부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견고한 토대는 경험과 관찰에 근거해야 한다.
흄은 경험을 지식의 유일한 토대라고 보는 경험주의의 입장에서, 바로 인간의 경험에 필수적이라 보이는 귀납논증1)과 인과관계의 필연성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일 수 있었다. 우선 ‘귀납논증의 문제(problem of induction)’라고 알려진 것부터 살펴보자.
귀납논증의 문제 거지논법, 순환논증
흄에 의하면 귀납논증은 ‘관찰된 사실로부터 관찰되지 않은 사태의 추론’을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감각과 기억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감각과 감각의 기록을 의미하는 기억, 즉 경험의 뒷받침이 없는 지식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경험주의자라면 응당 귀납논증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귀납추론이 갖고 있는 중요성이다. 지금은 과학의 방법론을 꼭 귀납논증에서 찾고 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자연과학이란 제한된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귀납논증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 유일한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귀납논증의 정당성이 부정된다면,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연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흄이 귀납논증을 비판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300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논리학자들이 귀납논증에 연역논증이 갖는 수준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하여왔음은 물론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시도가 예외 없이 항상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거지논법(begging the question) 즉 순환논증에 빠지고 만다는 점이다.
귀납논증을 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연이 지금까지의 진행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이른바 ‘자연의 제일성(齊一性, uniformity of nature)’을 가정하는 것이다. 자연의 제일성을 귀납논증에 추가한다면 쉽게 그 정당화가 가능하다. 문제는 자연의 제일성이란 바로 귀납논증의 정당성과 내용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이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귀납논증을 경험주의의 입장에서 정당화하려는 또 다른 시도는 귀납논증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경험이 바로 귀납논증을 포함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귀납논증으로 귀납논증을 정당화한다는, 즉 ‘대상과 수단의 동일성’으로 인해 이 시도 역시 원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동양의 속담에 ‘손가락이 모든 것을 가리켜도 자신을 가리키지는 못한다’는 방법론적 순환에 대한 경고가 여기에 적용될 수 있다.
결국 ‘매일 새벽 6시 종이 울리면 먹이를 받아먹게 되자, 귀납논증을 통해 ‘새벽 6시 종 → 식사시간’이라는 결론을 내린 천재 칠면조가 어느 날 새벽 6시 종이 울리자 먹이를 받는 대신 목이 잘렸다’는 러셀식 우스개가 현재 귀납논증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해 흄에 의하면 관찰된 규칙성(regularity)만으로는 귀납논증을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귀납논증은 다만 인간의 마음이 형성하는 습관(custom)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과관계의 필연성에 대한 흄의 비판
귀납논증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인과관계의 필연성에 대한 흄의 비판이다. 여기서 흄이 말하는 경험의 내용을 약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흄에 의하면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를 경험할 때, 우선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인상(impression)을 받게 된다. 이 인상은 직접적인 만큼 강렬하고 생동적이다. 다른 한편 인상은 인간의 마음속에 관념(idea)을 남기게 되는데, 이 관념은 인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흐릿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인과관계가 원인(cause)이라는 사건유형(e venttype)과 결과(effect)라는 사건유형과의 관계라는 점, 그리고 원인이 선행하고 결과가 후행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흄의 비판을 살펴보자. 우선 흄은 인과관계를 인간이 결코 선험적(a priori)으로, 즉 인상들의 논리적 포함관계로부터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다. 실제로 어떤 신약이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논리학자가 아니라 임상의학자이다. 즉 경험에 의해서 인과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어떤 사건유형을 다른 사건유형의 원인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원인에 이어 결과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함축한다. 한 마디로 인과관계의 파악에 있어서 두 사건유형을 우리는 서로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처럼 독립적인 존재들 간의 관계를 ‘외재적(external)’이라고 불렀으며, 인과관계는 이런 점에서 외재적 관계다.)
추론이 아니라면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관찰, 즉 경험에 의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인과관계를 직접 관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의 시간적 양상에 의해 원인이 존재할 때는 결과가 없고, 결과가 존재할 때는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과관계를 두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추론에 의해서도 관찰에 의해서도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인과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흄의 결론은 귀납논증의 경우처럼 습관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즉 특정한 사건에 이어서 또 다른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반복되면, 우리의 마음은 습관적으로 이 두 사건의 유형으로부터 받는 인상들과 이에 상응하는 관념들을 결합하여(associate), 즉 투사(projection)하여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흄의 비판이 있기 전까지는 인과관계는 필연적 연결(necessary connection)로 간주되었지만 이제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확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과관계를 개별사건(event token) 간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한 조건은 비슷한 사건들의 반복을 의미하는 규칙성이지만, 이 경우 인과관계의 필연성은 논리적으로 확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인과관계가 단순히 반복에 의한 규칙성과 다르다는 점에서, 즉 원인이란 인과력(causal power)을 갖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떤 비판이 가능할까?
개별사건간의 인과관계란 오로지 사후에만 판단된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란 실은 하나의 사건을 분할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때 확보된 필연성은 두 사건이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의 상실에 기인한다. 파르메니데스적 일자(一者, the Oneness)가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전체의 분할에서 생기는 상호의존적, 필연적 관계를 ‘내재적(internal)’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의 인식론적 전회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선구자
흄의 귀납논증과 인과관계의 필연성 비판은 칸트에게 ‘지식의 원천은 오로지 경험에 있을 뿐이지만, 경험이 곧바로 지식은 아니다’라는, 이른바 철학의 인식론적 전회2)(轉回)를 가져왔으며,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인간의 지식체계를 경험의 의한 검증가능성에 기초하려는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생전에는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영국의 역사(History of England)] 6권을 지은 역사가로서 더 알려진, 그리고 대학에는 한 번도 자리를 얻지 못한 ‘흄의 회의’에 대한 구조적 이해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흄의 인과관계의 필연성 비판은 구조적으로 볼 때 사실 인과관계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비판의 핵심을 조금 더 일반화시키면 ‘독립적으로 도입된 어떤 존재들 간에도 필연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두 존재간의 필연성 확보란 사실 ‘하나의 존재를 두 부분으로 분할하여 경계를 그었지만 두 부분이 만나고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파르메니데스의 귀환!) 다빈치의 물과 공기의 경계, 연속개념, 극한, 무한소의 이중성, 인과관계의 필연성 비판 등은 어쩌면 동일한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하는 친족들일 가능성이 있다.
🧐 흄, 기존 철학의 허약한 토대를 깨다
데이비드 흄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지성을 발휘하며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철학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의 주저인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을 집필합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흄은 기존의 철학 체계들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지, **'정합성의 부족'**과 **'확실성의 결여'**라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
그는 경험을 지식의 유일하고 견고한 토대로 삼는 경험주의의 입장을 취하며, 이 경험적 토대 위에서 기존 철학의 허점을 파헤치려 했습니다. 흄에게 있어 지식의 출발점은 오직 감각을 통해 얻는 **'인상(impression)'**과 그 인상의 희미한 흔적인 '관념(idea)'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 원칙을 바탕으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 즉 귀납논증과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 귀납논증의 문제: ‘칠면조의 우스개’가 보여주는 진실
과학적 지식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여겨졌던 귀납논증은 개별적인 관찰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법칙을 도출하는 추론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본 모든 백조는 희다'는 관찰을 통해 '모든 백조는 희다'는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죠. 🦢 하지만 흄은 이 귀납논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바로 **'귀납논증의 문제(problem of induction)'**입니다.
그는 귀납논증이 **'관찰되지 않은 사태에 대한 추론'**이라는 점에서 경험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내일 해가 뜰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일 아침 해가 떠왔다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죠. 하지만 흄은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흄의 비판을 해결하기 위해 귀납논증을 정당화하려 시도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자연의 제일성(uniformity of nature)', 즉 자연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가정을 추가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흄은 이 가정이 바로 귀납논증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라고 반박합니다. 이는 마치 '거지 논법(begging the question)', 즉 **'순환 논증'**에 빠진 것과 다름없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논리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 버리는 것이죠.
다른 시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귀납논증이 지금까지 잘 작동해왔다는 경험"을 내세우는 것 역시, 귀납논증을 귀납논증으로 정당화하는 꼴이 되므로 결국 제자리걸음일 뿐입니다. 🔄 이처럼 귀납논증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흄은 귀납논증은 논리적인 추론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이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하는 **'습관(custom)'**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유명한 **'천재 칠면조의 우스개'**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매일 아침 6시에 먹이를 받던 칠면조는 6시 종소리가 식사를 의미한다고 믿었지만, 어느 날 그 종소리는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신호였던 것처럼 말이죠. 🦃🔪
🔗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해체하다
귀납논증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바로 인과관계의 필연성에 대한 흄의 비판입니다. 💥 우리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흄은 이 **'필연적 연결(necessary connection)'**이라는 것이 우리의 경험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흄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두 사건이 시간적으로 인접하고(contiguity), 선후 관계를 가지며(priority), 반복해서 발생하는(constant conjunction) 것뿐입니다. 우리가 '당구공 A가 B를 쳤다'는 사건을 볼 때, 우리는 A의 움직임과 B의 움직임을 따로따로 관찰할 뿐, A의 움직임이 B의 움직임을 '강제로 일으키는' 필연적인 힘이나 연결고리는 결코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도 없고, 직접 관찰할 수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인과관계는 원인이 있을 때 결과가 없고, 결과가 있을 때 원인이 없기 때문에 두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과관계를 믿는 것일까요? 🤷♀️
흄의 답은 귀납논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습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반복된 경험을 통해 원인과 결과에 해당하는 두 사건의 관념들을 **연합(associate)**하고, 그 관계를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투사(projection)**한다는 것입니다. 인과관계의 필연성은 객관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 흄의 유산: 인식론적 전회와 논리실증주의
흄의 이러한 비판은 철학사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이마누엘 칸트를 "도그마의 잠에서 깨게" 만들었으며, **'지식은 오직 경험에서만 비롯되지만, 경험이 곧 지식은 아니다'**라는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곧 철학의 관심사가 형이상학적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옮겨가는 **'인식론적 전회(Epistemological Turn)'**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
또한 흄의 사상은 20세기의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흄의 주장처럼,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진술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과학적 지식만이 유의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흄의 비판은 단순히 귀납논증이나 인과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의 비판의 핵심은 **'독립적으로 도입된 어떤 존재들 간에도 필연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더 넓은 구조적 문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독립적인 존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은, 사실 하나의 존재를 두 부분으로 분할해놓고 그 경계가 만나는 것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이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했던 **'하나(the Oneness)'**로의 회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결론적으로, 흄의 철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지식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냉철한 '회의'는 지식에 대한 우리의 겸손함을 일깨우고, 앞으로도 계속될 탐구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철학⦁불교⦁종교⦁인문학⦁자기계발...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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