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1교시] FULL ver. 한중일 술 삼국지 2부 : 혁명의 시대, 산업이 된 술 l 맛칼럼니스트 박상현
🍾 1부: 거대한 산업, 세계를 호령하는 한중일 술의 저력
먼저, 우리가 현재 이야기하는 한중일 술의 저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몇 가지 충격적인 현상을 통해 그 위용을 가늠해 보겠습니다.
🇯🇵 일본: 전 세계 주류 브랜드를 '쇼핑'하다
여러분, 일본의 주류회사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한때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류 군단을 거느린 나라였습니다 [03:02]. 일본의 기린(Kirin), 아사히(Asahi), 산토리(Suntory)와 같은 유명 주류회사들은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버블 경제 시기)을 바탕으로 해외의 유명 주류회사들을 마치 '쇼핑하듯이'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02:37].
단순히 일본의 위스키 브랜드를 키우는 데 그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미국의 버번 위스키, 남미의 데킬라, 북유럽의 보드카 등 세계 주요 증류주 시장의 핵심 브랜드들을 싹쓸이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02:25]. 부동산을 사들이는 대신, 미래의 성장 동력인 해외 주류 회사와 브랜드를 매입하는 데 집중 투자한 것입니다. 비록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한때 일본 주류 산업이 세계 시장에 미쳤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02:51].
🇨🇳 중국: '마오타이'라는 이름의 350조 원짜리 황제주(皇帝酒)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중국의 **귀주 마오타이(貴州茅台)**입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전 세계 주요 주류회사들의 주가 총액을 비교해 보면, 압도적인 1위는 바로 마오타이를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03:14].
- 💰 마오타이의 시가총액: 무려 350조 원에 달했습니다 [03:26]. 이는 한때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주가 총액을 뛰어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03:39].
- 글로벌 경쟁자 압도: 전 세계 맥주 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하며 수많은 유명 맥주 브랜드를 거느린 2위 기업인 아노이즈 부시 엠베버(Anheuser-Busch InBev)조차 마오타이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03:49]. 일본 최대 주류 기업인 아사히 그룹의 주가 총액은 마오타이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입니다 [04:10].
마오타이는 시가총액 면에서 세계 주류회사 가운데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는 중국 술 산업이 가진 엄청난 자본력과 브랜드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04:28].
🇰🇷 한국: '진로 소주'의 판매량 21년 연속 세계 1위 신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한국의 진로 소주 브랜드는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통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로 소주는 21년 연속 전 세계 증류주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04:40].
물론 이 통계는 알코올 도수나 술의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출고량', 즉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를 기준으로 합니다 [04:53]. 진로 소주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임을 감안하더라도, 전 세계적인 판매량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입니다. 인도의 위스키 회사나 독주를 즐기기로 유명한 러시아조차도 우리나라의 증류주 소비량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입니다 [05:18].
결국, 일본이 해외 유명 주류회사를 사 모으고, 중국이 시가총액 1위의 거대 기업을 배출했으며, 한국이 판매량 1위의 독보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한중일 삼국이 주류 산업에서 거대한 성과를 이루었음을 증명합니다 [05:51].
📌 주류 소비량의 진실 [06:03]
하지만 여러분, 이 세 나라가 술을 대단히 많이 마셔서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요? 흥미롭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2018년 1인당 연간 음주량을 보면, 한국은 약 9.7L, 중국은 약 7L, 일본은 약 8L 정도를 마십니다. 이는 미국(10L)이나 유럽 국가들(13~14L)에 비해 오히려 낮은 수준입니다 [06:22].
즉, 한중일이 술을 많이 마시는 민족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주류 회사의 '가치'**와 **'산업적 규모'**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표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06:43].
🌪️ 2부: 격동의 소용돌이 속, 한중일 술의 운명
이제 근현대의 격동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한중일의 술들이 어떤 극적인 운명을 겪게 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중국: 혁명의 동지가 된 두 극단의 술, 마오타이와 이과두주
중국을 대표하는 귀주 마오타이와 홍성 이과두주는 가격대와 위상은 극과 극을 달립니다. 하지만 이 두 술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혁명의 동지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07:15].
👑 마오타이: 국주(國酒)의 신분 상승 드라마
마오타이는 귀주성 마오타이 진(茅台鎭)이라는 마을 이름이자 술의 브랜드입니다 [07:41]. 약 2,000년 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백주는 다음과 같은 까다로운 제조 과정을 거칩니다:
- 7번의 증류: 무려 일곱 번의 증류 과정을 거칩니다 [07:41].
- 5년 이상의 숙성: 증류 후 항아리에 담아 최소 5년을 숙성시킵니다 [07:52].
- 장기 블렌딩: 5년 숙성으로 끝나지 않고, 10년, 20년, 심지어 40년 숙성된 술을 섞어 마오타이 특유의 맛을 만들어냅니다 [08:05].
이처럼 희소성과 까다로운 제조법 때문에 마오타이는 엄청난 몸값을 자랑합니다. 중국의 인구는 14억이고, 공산당 당원만 9,700만 명인데, 마오타이의 연간 생산량은 약 6천만 병 정도로 더 이상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08:28].
- 가격과 가치: 2019년에 출시된 마오타이는 중국 현지 시세로 한 병에 60만 원에서 75만 원에 달합니다 [09:06].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마오타이는 단순히 술이 아니라 중국의 중요한 재산 축적 수단이며, 심지어 마오타이로 대출까지 가능할 정도입니다 [09:16].
대장정(大長征)의 위안주 [10:01]
마오타이가 국주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입니다. 1937년부터 공산당(홍군)이 국민당을 피해 서부 내륙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12,500km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10:35]. 이때 마오타이 진에 도착한 홍군에게 대접된 술이 바로 마오타이였습니다 [10:48].
이 술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홍군 지도부(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에게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11:02]. 특히 마오타이는 음용 외에도 상처를 치유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상처 입은 발에 이 독주를 담가 혈액순환을 돕고 상처를 소독하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11:29]. 중국 공산당은 이 기억을 잊지 못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기념주로 마오타이를 사용하며 마오타이는 공식적인 국주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1:51].
🔴 홍성 이과두주: 인민에게 봉사하는 가장 저렴한 술
반면, 베이징에서 만들어지는 **홍성 이과두주(紅星二鍋頭)**는 단돈 1,500원에서 3,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합니다 [09:28]. 이는 한국의 희석식 소주처럼 중국 인민들에게 가장 대중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술이었습니다 [09:40].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인민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인민에게 복무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술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12:29]. 이 명령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홍성 이과두주입니다.
- 이과두주(二鍋頭)의 의미: 술을 증류할 때 두 번째 증류 과정에서 받아낸 증류주가 가장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즉 전통적인 증류 방식 중 하나입니다 [12:52].
- 국영기업 1호: 홍성 이과두주는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국영기업으로 설립되었으며, 인민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13:03]. 첫 번째 병은 중국 공산당에 헌정되었고, 지금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그 역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3:26].
이처럼 중국의 술들은 혁명과 함께 성장했으며, 마오타이는 최고 지도층의 상징으로, 이과두주는 인민의 애환을 달래는 동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3:46].
🤝 외교 무대의 주역: 닉슨과 마오타이 [13:55]
마오타이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정상회담 만찬주로 쓰인 것입니다 [14:08]. 저우언라이는 대장정 당시부터 마오타이를 애정했으며, 이후 주요 국빈 행사 때마다 마오타이를 만찬주로 사용했습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1978년) 이후에는 중국 항공사 퍼스트 클래스에서 서방 사업가들에게 마오타이를 제공할 정도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마오타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14:44].
최고 지도자의 취향과 술의 운명 [37:33]
중국 술의 운명은 최고 지도자의 취향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 마오쩌둥: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상징적인 연회에서는 마오타이주를 마셨습니다 [37:45].
- 덩샤오핑: 술을 매우 좋아했으나, 고령에는 의사의 권고로 독주인 마오타이를 대신하여 **황주(黃酒)**를 마셨습니다 [38:08]. 그는 점심 식사 때 황주 두 잔과 해바라기씨를 곁들이고 낮잠을 즐기는 규칙적인 생활로 93세까지 장수했습니다 [38:28].
- 시진핑과 몽지람: 2013년 시진핑 지도부 출범 후,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 정책이 시행되면서 공금 사용(관용차, 외유, 접대)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고급술인 백주 시장이 한때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39:20]. 하지만 2017년부터 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이때 **'몽지람(夢之藍)'**이라는 술이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40:08]. 시진핑의 **'중국 몽(中國夢)'**이라는 국가 정책을 반영하여 '바다보다 넓은 것은 하늘, 하늘보다 넓은 것은 중국인의 꿈'이라는 기가 막힌 카피를 내세워 지도자의 애용주가 되었고,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41:11].
🇯🇵 일본: 과학화와 합성주의 치명적인 유산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기술을 엄청나게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고속 성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15:08]. 이 과정에서 술의 제조 기술 역시 서구의 화학 기술을 도입하여 과학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5:45].
📦 유통의 현대화와 품질 관리 [16:08]
- 댓병(一升瓶, 쇼빈)의 등장: 이전까지 나무통에 담아 팔던 술이 19세기 후반 맥주병에서 착안하여 1.8L 유리병(댓병)에 담겨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유통의 현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6:23].
- 신주 품평회: 1911년부터 시작된 **일본 전국 신주 품평회(新酒品評會)**는 전국의 모든 사케를 모아 전문가들이 품평하는 행사로, 무려 1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16:54]. 이는 일본 술의 품질 표준화와 고급화에 엄청난 저력이 되었습니다 [17:07].
⚠️ 이화학연구소(理研)의 비극: 순 합성주 [18:12]
그러나 태평양 전쟁 시기는 일본 술 산업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습니다. 물자 부족으로 배급제가 시행되자, 쌀로 술을 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7:30].
- 과학의 악용: 일본 이화학연구소(理研, 리케인)는 술의 근본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술이 결국 알코올과 향, 맛을 내는 감미료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9:08].
- 주정(酒精)의 탄생: 이 연구소는 여러 재료를 합성하여 약 **85% 도수의 주정(고도 알코올)**을 만들어냈고, 여기에 감미료와 화학 성분을 섞어 사케 맛이 나는 술을 만들었습니다 [19:34]. 이것이 바로 순 합성주 또는 이연 청주라고 불린 술입니다 [19:47].
- 전통의 단절: 이 기술은 대형 양조장들에게 전수되었고, 쌀 한 톨 없이도 사케 맛이 나는 술이 제조되어 전국의 병사들과 국민들에게 보급되었습니다 [20:01]. 이 합성주 제조 방식은 일본 술의 전통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0:24].
🇰🇷 한국으로 이어진 치명적인 유산 [20:34]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일본에서 1950년대를 거치며 사라졌던 이 합성주 기술을 해방 후 우리나라가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20:38]. 일본 이화학연구소가 만든 합성주 제조 기술이 그대로 이어져,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주정에 물과 각종 감미료를 타서 만드는 술)'**의 전통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21:06].
🇰🇷 한국: 술을 빚고 마실 권리를 빼앗기다 (치욕의 100년)
우리 한국의 술, 조선의 술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주권(主權)'과 함께 '술을 빚고 마실 권리'까지도 함께 빼앗기는 치욕적인 역사를 겪게 됩니다 [21:32]. 그리고 이 아픔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1:54].
⚖️ 주세법(酒稅法)과 가양주(家釀酒) 문화의 몰락 [22:08]
일제는 식민지배에 필요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세금 갈취 방법을 고도화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한국 공산품 산업 규모의 **25%**를 차지하고 있던 주조 산업이었습니다 [22:23].
- 소비세의 시초: 1909년에 제정된 주세법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소비세 관련 법규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22:48].
- 권리의 박탈: 조선시대에는 누구나 술을 빚고 마실 수 있는 가양주 문화가 발달했지만 [22:59], 주세법 등장 이후 술은 국가의 면허를 득해야만 빚을 수 있는 **'제품'**으로 바뀌었습니다 [23:23].
- 양조장 대형화: 일제는 주세령(酒稅令, 1916년)을 제정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던 양조장을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세령 이전 무려 39만 개에 달했던 술 빚는 곳이 재정 후에는 약 2,900개의 양조장만 남게 되었습니다 [24:04]. 관리가 쉬워지고 대형화로 생산량이 늘면서, 세금은 오히려 더 많이 걷을 수 있었습니다 [24:28]. 이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가양주 문화는 완전히 몰락했습니다 [24:41].
🍶 청주(淸酒) 이름까지 빼앗기다 [24:41]
주세령에는 우리 전통주에 대한 치명적인 함정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 명칭 변경: 주세령은 '조선주'를 탁주, 약주 및 소주로 정의하면서, 조선시대에 청주(淸酒)라고 불리던 술들을 모두 약주(藥酒)로 이름을 바꿔버렸습니다 [25:17].
- 일본 사케의 청주: 일본인들이 국주로 생각하는 사케가 한자로 '청주'를 썼기 때문에, 조선에서 '청주'라는 명칭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25:31].
- 현재까지의 영향: 이 명칭은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부활되지 못하고, 현재 주세법에서도 약주와 청주가 분리되어 남아있는 우리 술 역사의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25:43].
🌾 해방 후의 시련: 쌀 막걸리 금지 조치 [25:43]
해방 후에도 전통주의 수난은 계속되었습니다. 1960년대, 한국은 만성적인 쌀 부족에 시달리면서 혼분식 장려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 쌀 사용 금지: 1965년, 농림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약주·탁주 제조에 있어서 쌀 사용을 금지한다"**는 결의안을 내렸습니다 [26:19]. 일본이 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우리 정부 스스로가 내린 것입니다 [26:29].
- 밀가루 막걸리 시대: 이때부터 우리 막걸리는 쌀이 아닌 미국의 원조 물자였던 밀가루로 빚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전통주의 품질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26:39].
- 차별적 허용: 더욱 통탄할 일은, 약주/탁주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하면서도 '청주'만큼은 쌀 사용을 허락했다는 점입니다 [27:06]. 당시의 청주는 **일본식 제법(일본식 누룩인 입국 사용)**으로 만든 술이었기에 허가해 준 것입니다 [27:13]. 우리 정부 스스로가 일본식 술에는 혜택을 주고, 우리 고유의 약주와 탁주는 쌀로 빚을 수 없도록 하여 발전을 더디게 만든 치명적인 조치였습니다 [27:40].
🚀 3부: 경제 개발의 윤활유, 술 산업의 도약
이러한 혼란의 시대를 거쳐, 한중일은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돌입했고, 술은 그 가파른 성장 속에서 훌륭한 윤활유 역할을 해냈습니다 [28:01].
🇯🇵 일본 술의 화려한 부활: 사케와 소주의 새로운 트렌드
일본은 고도 성장과 함께 한때 망가졌던 주류 산업이 오히려 더 크게 부활했습니다 [28:12].
컵 사케와 글로벌화의 상징 [28:29]
- 컵 사케(カップ酒, 1964년): 일본이 경제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던 1964년(신칸센 개통, 도쿄 올림픽 개최)에 **'언제 어디서나 술을 마시자'**는 콘셉트로 개발되었습니다 [29:00]. 뚜껑을 따서 바로 마시는 180ml 용량의 이 컵 사케는 유통의 혁신을 상징합니다.
- 종이팩 사케(1980년대): 술이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종이팩 사케가 1980년대에 등장하여, 유통 과정의 무게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술을 담는 패키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29:31].
- 미국 현지 공장 건설: 1979년 오재키(Ozeki), 1989년 월계관(月桂冠) 등 유명 사케 회사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현지 공장을 세우고 사케를 생산했습니다 [30:07]. 캘리포니아의 저렴하고 품질 좋은 칼로스 쌀과 풍부한 지하수를 활용한 것입니다 [30:39]. 이는 스시, 덴푸라 등 일본 음식이 미국 시장에 대중적으로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음식은 항상 술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31:01].
🔥 소주(燒酎)의 두 차례 붐과 '키핑' 문화 [31:12]
일본의 증류주인 소주는 사케에 비해 더디게 발전하다가 두 차례의 큰 유행을 맞이합니다.
- 제1차 소주 붐 (1970년대 후반): 따뜻하게 데운 소주를 마시는 광고가 유행하면서, 특히 겨울철에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31:31].
- 제2차 소주 붐 (2000년대 초반): 미즈와리(水割り) 방식이 유행했습니다. 얼음과 찬물에 독한 소주를 희석해서 마시는 이 방식은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32:05]. 소주를 마시는 것이 '세련된 젊은이들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면서, 사케를 마시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의 술'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32:26].
이 열풍은 일본의 독특한 음주 문화를 낳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술을 병째로 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 시기에 **소주를 병째로 시켜서 마시다가 남은 것을 음식점에 맡겨두는 '키핑 문화'**가 처음 생겨났습니다 [33:06]. 결국, 이 제2차 소주 붐으로 인해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소주 판매량이 사케 판매량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33:17]. 이는 우리 전통주 활성화에도 **'마시는 방식의 변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33:40].
🇰🇷 한국 희석식 소주의 역할과 알코올 도수의 변화
한국의 산업화 시기, 그 윤활유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희석식 소주였습니다.
🥃 청주에서 소주로의 전환 [33:49]
- 1960년대: 60년대까지는 청주가 대세였습니다. 서서 마시는 술집인 스탠드바 문화가 유행했으며, 이 술집에서는 청주가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34:03].
- 1970년대: 급격한 산업 성장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스탠드바에서 여유롭게 청주를 마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34:24]. 밥과 함께 반주로 빨리 먹고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가 서민들의 술로 변모하게 됩니다 [34:34].
희석식 소주는 카사바나 감자 등 전분질이 많은 열매를 여러 번 증류하여 얻은 95%의 고도 알코올, 즉 **주정(酒精)**에 물과 각종 감미료를 타서 각 회사 고유의 맛을 만들어낸 술입니다 [35:25]. 희석식 소주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누구나 즐길 수 있었고,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산업화 시절의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35:59].
📉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의 비밀 [36:08]
한국 소주의 도수는 1930년대 처음 만들어질 당시 35도였으나, 경제 발전과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2019년을 기점으로 소주의 도수는 17도 아래로 떨어지며 '16.9도 시대'가 열렸는데 [36:31],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 TV 광고 규제: 우리나라 국민건강증진법상 술 광고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의 술은 TV 광고가 가능합니다 [36:44].
- 젊은 층 공략: 주류회사들은 젊은 층, 특히 여성을 주요 소비층으로 공략하기 위해 TV 광고가 필수였고, 이를 위해 17도보다 낮은 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37:11].
- 소비층 변화: 이로 인해 소주의 주요 소비층은 젊은 세대, 그중에서도 여성으로 크게 확산되었고, 오늘날 소주 광고의 초점은 대부분 여성 모델에 맞춰져 있습니다 [37:33].
🌎 4부: 오크통을 두드리다: 거대한 산업과 세계 시장으로의 도약
이제 한중일의 술은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여 세계 시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 도전 방식 중 하나는 '서구적인 숙성 방식'과의 결합입니다 [41:33].
🌳 중국 백주의 오크통 숙성 실험 [41:44]
중국 백주 회사, 특히 마오타이와 같은 기업이 350조 원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배경에는, 술을 빚어 항아리에 담아 지하 저장고나 동굴에 보관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42:17]. 이렇게 저장된 백주의 양과 가치는 회사 전체 가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며, 오래된 술일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42:28].
- 서구 취향 존중: 세계 시장, 특히 서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은 서구인의 취향을 존중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42:51].
- 프랑스산 오크통: 이에 중국에서는 이제 항아리가 아닌 프랑스산 오크통에 백주를 넣어 장기 숙성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43:02]. 오크통에서 숙성된 백주는 중국 내부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중국 백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43:14].
🇰🇷 한국 전통주의 새로운 도전 [43:23]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주를 프렌치나 아메리칸 오크통에 숙성시켜 부가가치를 올린 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전통주도 이 방식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43:36].
안동의 보리를 가지고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의 저장고를 보면, 한쪽에는 전통 방식의 항아리가, 다른 한쪽에는 오크통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43:47]. 이는 두 가지 방식 모두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크통에 숙성한 우리 증류주가 세계적인 증류주 평가 대회에 나가 최고상을 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43:59].
이처럼 한중일의 술들은 서구의 숙성 방식과 결합하면서 미국, 유럽 시장에서 몸값을 점점 높여 나가고 있으며, 우리 전통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시작은 늦었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44:32].
🌟 5부: K-술의 시대, 한국 전통주의 화려한 부활
우리 술을 옥죄고 있던 **'족쇄'**들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이제 한국 전통주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44:45].
1️⃣ 전통주 복원의 시작 (1983년) [44:45]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우리 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1983년에 비로소 명맥이 끊어졌던 우리 전통주에 대한 조사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45:00]. 이 조사를 통해 전통주의 개념이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2️⃣ 가양주(家釀酒) 문화의 부활 (1997년) [45:26]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97년에 일어났습니다.
- 86년 만의 해방: 1909년 일제의 주세법이 만들어진 이후, 개인이 자기가 먹기 위한 용도로라도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된 86년 만에 [46:09], 1997년 주세법이 바뀌면서 **'팔기 위한 용도가 아니면 개인도 술을 빚을 수 있다'**고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45:54].
- 민족적 성취: 이는 우리 스스로가 가양주의 끊어진 명맥을 다시 살려낸, 매우 의미 있는 민족적 성취였습니다 [46:09].
3️⃣ K-술 시대의 도래와 현재 트렌드 [46:21]
전통주를 옥죄던 규정들이 사라지면서, 우리 전통주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 온라인 판매 허용 (2017년): 2017년부터 법이 바뀌어 전통주 카테고리에 속하는 술들은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졌습니다 [46:44]. 희석식 소주나 맥주는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하지만, 전통주 양조장들에게는 이는 엄청나게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47:18].
- 새로운 소비층과 유통: 전통주를 마시는 젊은 층이 늘어났고, 전통주 양조장을 시작하는 세대 또한 젊어지고 있습니다 [47:30]. 도심에서는 전통주를 모아놓고 판매하는 **바틀샵(bottle shop)**과 전통주 주점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47:42].
- K-푸드와의 시너지: 술은 항상 음식과 함께 움직입니다 [47:53]. 지난 코로나 시기, **한국 식품(K-푸드)**이 역대 최고 수출을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48:18], 이는 이제 **한국 술(K-술)**이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예고합니다 [48:29].
맺음말: 술을 빚고 즐길 권리, 그리고 K-술의 미래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한국의 전통주는 이제 막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 가양주 문화는 **'술을 빚고 술을 즐기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됩니다. 이 권리는 술을 통제하고 세금을 걷는 수단으로 여기는 순간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49:05].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술을 정성으로 빚고 예로써 마셨던 민족입니다 [49:16]. 오랜 세월 축적된 이 DNA는 100년이라는 어둠의 시간을 지나도 반드시 부활합니다 [49:28].
아직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가장 훌륭한 술'은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술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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