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철학
“눈부신 정신을 소유하고 있고, 지적으로 무척 담대할 뿐만이 아니라, 박물학자, 철학 이론가, 실험과학자의 최상의 덕목들을 고루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지금껏 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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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정신을 소유하고 있고, 지적으로 무척 담대할 뿐만이 아니라, 박물학자, 철학 이론가, 실험과학자의 최상의 덕목들을 고루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지금껏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찰스 다윈이다.” 이것은 뛰어난 동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에른스트 마이어의 말이다. 여기에서 그는 우주와 생명의 역사에 대한 19세기 초반 이론들을 독창적이고 대담하게 결합하여 진화론을 만들어낸 다윈의 천재성을 극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천재성과 위대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 어떤 과학자는 자폐증 환자들이 가끔씩 가지는 극단적 천재성을 이용해서 다윈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1809년에 태어난 다윈은 50살이 되던 해인 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이 책으로 그는 현대 지성계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영향이 워낙 막강해서 진화론이 없었던 시대를 상상해내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윈의 진화론, 과학 분야를 넘어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다
작년, 2009년은 다윈이 태어난 지 200년, [종의 기원] 출판 150년이 된 해였다. 한국에서도 다윈에 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고, 많은 학술대회와 강연이 있었다. 덕분에 다윈의 일생과 그의 진화론에 대한 몇 가지는 제법 많이 알려졌다. 물론 네이버캐스트에서도 몇 번에 걸쳐 다윈과 그의 진화론을 다루었다. <오늘의 과학>에서 연재되었던 ‘최재천 교수의 다윈 2.0’이 대표적이며,<세계인물>에서 소개되었던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로버트 다윈’도 읽을 만하다. 앞에 글이 생물학적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뒤에 글은 다윈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다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하려고 한다. 물론, [철학의 숲]인 만큼, 그의 개인적인 면모나 생물학적인 내용보다는 철학적인 내용에 주목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간단히 진화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선택을 통한 공동 후손의 점진적 진화’라고 거칠게 요약된다. 물론 이 진화 과정 속에서 종의 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증가한다. 여기서 ‘자연 선택’은 진화의 메커니즘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진화의 역사에서 종의 생존과 소멸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그 답은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하다. 즉 자연 선택이란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개체들이 있을 때 그 중에서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것만이 생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단순성은 너무 놀라운 것이었다. 가령, 다윈의 불독1)이라고 불렸던 헉슬리(Thomas Henry Huxley)는 종의 기원을 읽은 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공동 후손’은 모든 생명들이 하나의 공동의 조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18세기 많은 과학자들이 받아들였던 존재의 대사슬 이론, 혹은 존재의 사다리 이론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공동 후손 이론은 생명들 사이의 관계를 사다리보다는 나무에 비유한다. 마지막 ‘점진적 변화’는 도약적 변화와 대립되는 것이다. 이런 진화 과정은 아주 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급작스럽게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윈의 이런 생각에는 당시 다양한 이론들이 영향을 주었다. 가령, 급변적 진화가 아닌 점진적 진화를 수용한 것은 라이엘(Charles Lyell)의 ‘지표면의 역사에 대한 동일과정설’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며, 자연 선택은 인위적으로 품종을 개량하는 ‘인위 선택’과 경쟁을 중요시하는 맬서스의 [인구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다윈의 위대함은 단지 그가 이러저러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진화론을 통해서 협소한 과학 분야를 넘어서 철학, 종교, 사회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제 이것을 살펴볼 시간이다. 이를 위해서 책을 뒤져 다윈의 말을 직접 살펴보자. 그리고 그것의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보자.
위기에 직면한 인간 중심주의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파산
첫 번째 인용: “생물들은 가지가 불규칙하게 달린 나무와 같다.”
이 말은 앞에서 언급한 공동 후손에 대한 것이다. 즉 생물들은 나무의 가지들과 같이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충격은 자연 속 인간의 위치가 변했다는 것이다. 인간도 생물이다. 따라서 인간도 생명의 나무 한 가지에 불과하다. 당시 사람들은 가장 하등한 것으로부터 가장 고등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큰 사다리를 이루고 있어, 하등한 생명들은 고등한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존재의 사다리 혹은 존재의 대사슬 이론이다. 그러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세계 내 인간의 특권적 지위는 사라져버린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된 근대 천문학의 혁명에 의해서 위기에 직면했던 인간 중심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서 파산하게 된다. 이에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오만하게도 자신이 대단히 위대한 신의 작품이어서 자신의 위치를 신과 그 피조물 사이에 놓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겸허한 소견으로, 나는 인간이 동물로부터 만들어져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천문학의 혁명에서 인간중심주의는 균열을 일으켰지만, 그 위기는 심각하지 않았다. 신은 여전히 인간을 위해서 자연을 만들었으며, 자연을 탐구하여 신의 권능을 세상이 알리는 것이 인간인 과학자의 목표였다. 하지만 진화론에 의해서 이런 목표는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다음에 설명할 다윈 진화론의 이론적 특징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에서 점점 멀어지는 신학
자연은 목적 없이 진화한다
두 번째 인용: “허셀이 내 책은 ‘잡동사니들에 관한 법칙’이라고 말했다는 군요. 그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책을 경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군요.”
허셀은 [종의 기원]에 대해서 왜 이렇게 악평을 했을까? 그것은 과학 방법론과 관계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수학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일반 법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반법칙들로부터 정확한 예측과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여기서, 일반법칙은 초기 조건이 주어졌을 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법칙을 말한다. 다른 말로, 그것은 결정론적인 법칙이다. 이렇게 결정론적인 일반법칙을 과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에는 종교적인 영향도 있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생각하기에 신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이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발견하고 그것의 위대함을 밝히는 것이 과학자의 임무였다. 즉 그들은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조화로운 수학적 일반 법칙을 발견하여 그 법칙들을 만든 신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 과학자의 소명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은 그렇지 않다. 다윈의 진화론은 통계적이다. 즉진화론은 어떤 변이체가 있을 때, 그 변이체가 나중에 생존하게 될지 멸종하게 될지 분명히 결정해주지 않는다. 단지 통계적으로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것 정도만 말해준다. 이렇게 확률적인 이론이 우주의 결정론적 질서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신의 권능도 드러내지 못한다. 진화론은 대충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들, 잡동사니들에 대한 법칙일 뿐이다. 만약 이것이 역시 과학이론이라면 더 이상 과학은 신의 권능을 드러낼 수 없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제 과학은 점점 더 신학에서 멀어지게 된다. 더욱이 자연은 신이 설계한 법칙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선택이라는 확률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 변화한다. 따라서 자연의 변화는, (설령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의도와 필연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더욱이 자연 변화의 목적이 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자연은 목적 없이 진화한다.
진화에서 목적론적인 성격이
사라진 다윈의 진화론
세 번째 인용: “자연 선택이 필연적으로 절대적인 완벽함을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지적 한계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서도 절대적인 완벽함을 찾을 수 없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은 진화에서 목적론적인 성격이 사라진 것이 다윈의 진화론은 가장 의미 깊고 수용하기 곤란한 문제였다고 진단한다. 다윈의 진화는 절대적인 완벽함을 위해 나아가는 목표 지향적인 과정이 아니다. 아마도 여기 인용문에서 ‘절대적인 완벽함’은 신이 인간을 위해서 마련한 목적일 것이다. 즉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해서 실현되는 진화는 신이 인간에게 제시한 목적을 향해 필연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확률적 메커니즘인 자연선택에 있어 필연적인 진화는 성립할 수 없다. 이런 목적 없는 진화는 몇몇 흥미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대표적인 것이 진화와 진보 사이의 관계다. 만약 목적론적 성격의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진화와 진보 사이의 관계는 분명하다. 점차 목적에 가까워지는 진화가 바로 진보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진화에서 목적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진화와 진보 사이의 관계는 다루기 어려워진다. 몇몇 과학자들은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목적을 도입하지 않고 진보를 정의하려고 했다. 가령, 구조적 복잡성의 증가나 환경으로부터 독립한 정도를 진보로 정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지지만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생명체도 있으며, 환경으로부터 독립한 정도는 측정하기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진화와 진보 사이의 문제점은 그것을 인간 사회에 적용했을 때 더욱 심각해진다. 특히 개혁적인 사람들은 진보를 부정하는 다윈의 진화론은 보수적이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할 뿐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마르크스 역시 자신의 역사적 변증법이 다윈의 자연과학 이론에 의해서 뒷받침된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역사 발전에 있어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자연 선택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 자신의역사 이론은 ‘필연적인’ 진보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역사이든, 생명의 역사이든, 인간 사회의 역사이든 그것들의 필연적인 방향이란 것이 있을까? 어쩌면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역사가 사후에 재구성된 것이 진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필연적 목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진화의 전체 과정을 가로질러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진화의 매순간 새롭게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살펴보면서 글을 마무리하자. 그것은 종과 본질에 대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타격을 가한
오래된 철학개념, 본질주의
마지막 인용: “우리는 종이라고 하는 용어가 지니고 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리고 발견할 수 없는 본질을 헛되이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최소한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타격을 가한 가장 역사적으로 오래된 철학 개념은 바로 본질주의다. 만약 본질주의를 받아들이면 진화는 불가능하거나 혹은 가능하더라도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도약적인 변화만이 가능해진다. 본질이란 자연 세계에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어떤 상황에도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윈 이전에 많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자연종(natural kind) 역시 본질이라고 생각했으며,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본질주의적 종개념을 받아들이면,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질은 바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질을 공유하고 있는 개체들이 있다면, 그들 사이에 경쟁은 불가능해지고 자연 선택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을 공유하기 때문에 개체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면 그들 중에서 적응을 잘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설사 진화가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점진적일 수 없다. 본질주의에 따르면 종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진화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생명에 역사에서 종이 단번에 등장하거나 단번에 사라지는 경우에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본질주의를 받아들이면 종은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도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윈은 이것을 부정한다. 다윈에게 있어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Natura non facit saltum.).’ 이렇게 본질주의를 받아들이면, 진화를 부정하거나 도약적 진화를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본질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본질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존재의 본질 이외의 것, 즉 그것의 개체성에 더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윈에서 있어 중요한 것은 개체들의 본질이 아니라 개체들 자체다. 자연 선택에 있어 따져봐야 할 것은 종의 생존이 아니라 개체의 생존이다. 다윈 진화론의 이런 특징으로부터 우리는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밖에 없다.’는 유명론적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생물학적 의미에서 다윈의 혁명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변이가 어떻게 계승되느냐의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멘델에서 비롯된 유전학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참을 잠잠하게 지냈던 진화론은 20세기 초반 유전학이 새롭게 발견됨에 따라서 훨씬 더 강력하게 부활한다. 유전학과 진화론이 통합되는 1940년대 생물학의 지적 변화를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이라고 부른다. 현대에 있어 진화론은 단지 생물학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철학적으로는 진화 인식론, 진화 윤리학 등의 분야가 만들어지고 연구되고 있으며, 철학 이외에서 진화 심리학, 진화 경제학 등의 학문 분야도 등장했다. 아직도 혁명은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 그 영향력을 예단하는 것은 성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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