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그로브는 ‘창작하고 싶다는 한결 같은 마음이 슈베르트만큼 강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 이 세상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열성을 다해 스스로 탐구하고, 그리고 마침내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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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는 ‘창작하고 싶다는 한결 같은 마음이 슈베르트만큼 강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 이 세상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열성을 다해 스스로 탐구하고, 그리고 마침내 쓰러져야 했던 슈베르트. 이토록 비참한 생애가 또 있을까. 참으로 슈베르트만큼 불행한 천재를 이전에 본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들에 핀 한 줄기의 꽃과 같은 생애를 보냈다. 천진무구함 탓으로 명성을 따르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 않았으며 오로지 예술에 정진했으나, 자연의 냉엄한 운명에 쓸쓸히 지는 꽃처럼 세상을 떠났다. 들의 꽃은 덧없이 졌지만 그 향기는 사방에 남아서 풍기고,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고 즐겁게 한다.
그는 1797년 1월 31일, 빈 교외 리히텐탈에서 가난한 교사를 아버지로 모신 가정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누나의 지도를 받아 그 소질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그의 걸작인 작품 1번의 「마왕」은 약관 18세 때의 작품이다. 이런 천재가 베토벤에게 인정된 것은 베토벤의 죽음 직전이었는데, 베토벤은 그 죽음을 앞두고 ‘왜 좀 더 일찍 슈베르트를 알지 못했던가’하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그토록 박명한 모차르트보다 더욱 짧은 생애를 마쳤다. 가난도 모차르트보다 더욱 심해서, 거의 굶어 죽다시피한 그의 죽음의 침상에는 겨우 몇 푼의 돈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로 31년의 짧은 생애이긴 했으나 가곡은 650곡에 달하여, 오늘날 세계를 넘나드는 전파에 슈베르트의 작품이 흐르지 않을 때가 없다. 악상은 샘처럼 풍부하게 한없이 넘쳐 흐르고, 아름다움은 주옥처럼 빛나고 있다.
당시의 음악인들이 신처럼 공경했던 베토벤은, 큰 별이 떨어지듯이 1827년 3월에 타계했다. 비로 부옇게 흐려진 빈 거리를 그들은 그 관을 메고 나아갔다. 지나가던 거리의 사람들도 조용히 멈춰 서서 위대한 베토벤의 관에 묵도하고 있었다. 엄숙하게 나아가는 이들 무리 속에 슈베르트도 있었다. 그는 눈물에 젖어 있었는데, 그 슬픔은 아마 다른 누구보다도 두드러지게 컸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1828년 11월 19일에, 그도 굶주림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친구들은 그 관을 메고 빈의 베토벤 묘지 옆에다 묻었다. 그의 명곡은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세상에서 불려지기 시작했다.
훗날 그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들은 그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겼다. ‘음악은 여기에 풍려한 보배와 그보다 훨씬 귀한 희망을 묻었노라. 프란쯔 슈베르트, 여기에 잠들다’. 슈베르트는 31세의 짧은 생애 동안에 많은 명곡을 남겼다. 그것은 교향곡 10개 · 관현악곡 4개 · 협주곡적 작품 1개, 실내악곡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 4개 · 첼로와 피아노 1개 · 플루트와 피아노 1개 · 피아노 3중주곡 3개 · 현악 4중주곡 15개, 그 밖의 실내악곡 4개 · 피아노 소나타 10개, 그 밖의 피아노곡 4개 · 피아노 연탄곡 10개 · 미사곡 7개 · 극 작품 14개 · 합창곡 81개 · 가곡집 3개 · 독창곡 약 530개가 있으며, 특히 가곡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알 수 없어 그야말로 ‘노래의 슈베르트’라고 일컫기에 어울린다.
슈베르트 : 네 손을 위한 환상곡 D.940
https://youtu.be/RvS5pcbzjjQ?si=eOSrrPJSKLne1G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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